경마가 가지는 특성일 것이다. 경주가 끝나면 늘 팬들이 이런 저런 볼멘소리가 섞인 항의 전화를 한다. 이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이 기수가 의도적으로 입상을 피하기 위해 채찍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보통 때 같으면 죽자 사자 채찍을 쓸 텐데 이번에는 횟수도 적고 강도도 약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말도 사람처럼 저마다 모두 특성이 다르다는 점과 채찍이 가지는 본래의 뜻을 오해한데서 생기는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채찍은 말을 더 빨리 뛰게 하지 않는다. 단지 말을 격려하여 속도가 떨어지지 않게 하고 더 집중하게 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한다는 뜻인 주마가편(走馬加鞭)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잘하는 사람을 더욱 장려, 북돋아 준다는 뜻을 가진다.
마술학 교과서는 채찍을 쓰는 목적으로 징계, 교육, 지시, 격려를 든다. 또 경주 중에는 될수록 채찍을 쓰지 말 것을 요구한다. 경주 중, 특히 결승선에서 말은 혼신의 힘을 다해 뛴다. 그런 말에게 징계나 교육을 위해 채찍을 써서는 안 된다. 오직 더 집중하라는 지시와 격려를 위해서만 써야 한다. 지시와 격려를 위한 채찍은 그렇게 강할 필요가 없다. 불필요하게 많이 사용할 이유도 없다.
종종 경주 중 기수가 채찍을 쓸 때마다 꼬리를 상하 좌우로 세게 흔드는 말을 본다. 말이 달리는 일에 집중하지 않고 채찍에 반항을 하는 반증이다. 죽을힘을 다해 애쓰고 있는데 누군가 더 하라고 때리거나 강요를 한다고 생각해 보라. 거의 대부분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면서 하던 일을 그만둔다. 지쳐서 더 이상 달릴 힘이 없는데 누군가 계속 강요를 한다면 오히려 모든 것을 포기할 지도 모른다.
말도 사람과 같다. 지친 사람에게 채찍을 쓰면서 강요하는 것은 그 옛날 노예에게나 하던 일이다. 말은 노예가 아니다. 말은 생명이 있는 동물이다. 털 달린 오토바이가 아니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무한으로 속도가 나는 기계가 아니다. 사람과 하나 되어 달리는 스포츠의 선수다. 경마의 진짜 주인공이다.
대부분 조교사와 기수도 같은 생각이다.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호주의 한 대학에서 행한 연구 결과도 채찍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말이나 이미 지친 말에게 채찍을 쓴다. 반항하는 말은 채찍을 거두고 손으로 추진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채찍을 댄다. 팬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채찍을 많이 강하게 쓰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오해가 한 몫을 한다.
소위 경마선진국일수록 채찍 사용에 대해 엄격하다. 어떤 나라는 결승선 구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총 횟수를 불과 서너 대 미만으로 제한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도 일정한 제한을 두고 있다. 결승선에서 총 스물다섯 번을 사용할 수 있고 연속해서 열 번을 초과하여 쓸 수 없다. 이를 어기면 벌금 내지 기승을 정지한다. 하지만 이를 더 강화할 계획이다.
짧은 순간에 돈을 잃고 따는 업종 특성상 크고 작은 갈등과 불만이 끝없이 제기된다. 모두가 다 시행체에 내려지는 채찍이다. 때로 너무 거칠어 마음이 상할 때도 있지만 우리 경마를 더 발전시키고 더 멋진 경주를 보고 싶다는 큰 뜻에는 차이가 없었다. 더 열심히 하라는 격려였고 호통이었다.

- 렛츠런파크 경마본부 심판처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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