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 시흥승마힐링센터 과장(우측에서 세 번째)은 셔틀랜드포니 ‘고고’와의 감동 스토리, “고고야, 같이 가자”로 승마 컨설팅 수기 공모전 우수상을 수상했다.
승마 컨설팅 수기 다섯 번째 순서로 우수상을 수상한 이소영 시흥승마힐링센터 과장의 ‘고고야, 같이 가자’를 소개합니다. 본 수기는 한국마사회 말산업육성본부 승마지원단이 주최한 ‘2015 승마산업 컨설팅 워크숍 수기 공모전’ 당선작으로 사업 홍보 목적 활용에 동의한 내용입니다. - 기자 말.

“수업을 마치자마자 집으로 내달려 망아지를 만났다. 혹 망아지가 놀랠까 살살 다가가서 ‘안녕, 만나서 반가워’라고 속삭이고 코에 따뜻한 입김을 불어 넣었다. 망아지도 콧김을 불어내어 나에게 인사하는 듯 했다. 분명 말이 낳은 새끼인데, 꼭 아기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배가 조금 부풀어 올랐고 고고의 눈망울은 더욱 침울해졌다. 작업복을 벗지 못하고 하염없이 고고의 옆에 있어야 했다. 마사지를 해주면 좀 나아질까, 평소처럼 살살 운동을 시켜볼까, 내 멋대로 주사라도 줘볼까…. 차도가 없는 고고를 보며 나는 한없이 무력감을 느꼈다.”
“회복실에서 만난 고고는 정신을 차리려고 기를 쓰고 있었고, 나는 그 옆에 앉아 고고에게 이름을 불러주고 코에 입김을 불어주었다. 처음 만났던 그 날처럼… 내가 왔다고… 내가 옆에 있으니 이제 무서워하지 말라고…….”


마사회에서 추진하는 사업들 중 전문 승용마 생산 농가 지원 사업이라는 것이 있다. 이 사업의 내용인 즉, 우수한 전문 승용마(하프링거·셔틀랜드포니·웰시포니·하노베리안 외) 도입을 위해 임신한 씨암말을 도입해 신청, 선정된 생산 농가에 지원해 주는 사업이다. 센터에서 재활승마교관으로 근무하며 재활승마용, 어린이 기승용 승용마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나는 이 사업에 셔틀랜드포니 도입 희망 신청서를 제출했고, 경기도와 농림부의 심사를 통해 지원 대상자로 선정됐다.

2014년 겨울, 짜리몽땅한 네 다리에 만삭이 되어 배가 땅에 닿을 듯, 걸음조차도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독일과 프랑스에서 눈처럼 흰 레일라와 사랑스러운 무늬를 가진 얼룩이 플루토가 나에게로 왔다.

우리가 예상한 레일라의 출산일은 이미 지났고, 나는 점점 속이 타들어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집에 전화를 걸어 출산의 기미가 있는지, 어미의 상태가 나쁘진 않은지 확인했고, 출산이 오늘내일이니 잘 지켜봐야 한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혹시 집이 비어지는 날이면 더욱 조마조마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지경이었다.

대학원에서 박사 수업을 받는 어느 금요일 오전이었다. 어머니에게서 계속해서 전화가 오는 것이 분명 일이 났다고 생각했지만, 엄숙하고 진지한 수업 시간에 냉큼 전화를 받을 수는 없었다. 곧 어머니에게서 양수에 푹 젖은 회색의 망아지가 레일라 옆에 앉아있는 사진과 아슬아슬 일어서 있는 사진 몇 장, ‘엄마가 발견했어~ 건강한 암망아지야. 신기하다…’라는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고, 조마조마한 마음에 교수님과 다른 원생들 모르게 흘끔거리며 핸드폰을 만지작대던 나는 도착한 문자 메시지를 보자마자 환호성을 터트리고 말았다. 깜짝 놀란 교수님과 동기들이 함께 기뻐해주며 신이나 날뛰는 내 모습에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수업을 마치자마자 집으로 내달려 망아지를 만났다. 며칠 전 출산을 위해 준비한 산방에 볏짚을 짧게 잘라 가득 넣어 놓은 탓에 폭신폭신한 마방에 태어난 지 약 10시간여 지나 뽀송뽀송해진 망아지가 고개를 아주 조금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셔틀랜드포니 성마의 체고가 1미터 정도이니 갓 태어난 망아지는 그 체고가 대략 50센티 이하. 내 팔 한 가득이면 안아 올릴 만큼 작았고, 눈은, 발굽은, 꼬리는… 더 작아 움직일 때마다 손가락으로, 어루만져보며 그 신기한 움직임을 느껴보려 했다. 혹 망아지가 놀랠까 살살 다가가서 ‘안녕, 만나서 반가워…’라고 속삭이고 코에 따뜻한 입김을 불어 넣었다. 망아지도 콧김을 불어내어 나에게 인사하는 듯 했다. 분명 말이 낳은 새끼인데, 꼭 아기의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망아지가 태어난 직후부터 각인 순치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어느 교재에서처럼 나는 순서를 기억해가며 망아지의 이곳저곳을 쓰다듬으며 사람의 존재를 느끼도록 했다. 온 가족이 매일 20여 분씩 망아지에게 그 작업을 계속했다. 그리고 학창시절 말의 번식 수업에서 강조됐던 망아지의 배꼽침지와 체온 확인에 신경 썼다.

그렇게 또 한달 뒤 플루토가 자기를 쏙 닮은 얼룩이 암망아지를 낳았고, 우리는 순식간에 식구가 두 배로 늘어 말이 4마리가 되었다. 직접 망아지를 받아보고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학교와 교육기관에서 이론으로 배웠던 것들과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며 공부한 내용들이 도움은 되었지만, 경험이 지극히 부족한 나는 적절한 시기와 방법을 알 수 없어 답답할 때가 많았다.

망아지를 기르는 일은 직장에서 해오던 재활승마교관의 업무와는 차이가 있었고, 씨암말의 적정 교배 시기나 절차, 보건 관리와 같은 내용은 여러 번 접하지 않아 생소했다. 궁금증에 불안함이 더해질 즈음 마사회에서 연락이 왔다. 전문 승용마 생산 농가를 지원하는 업무의 한 과정으로 마사회 소속의 말 전문 수의사와 장제사가 직접 방문해 나의 여러 가지 궁금증과 호기심을 해결해 줬고,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는 몇몇 정보들을 알려줬다. 수년간 말들과 함께한 분들에게서만 느껴지는 여유와 확신이 내게 큰 안도감을 가져다줬다.

그리고 곧 밴드가 개설됐다는 소식이 전달됐다. 처음에는 전문 승용마 도입 지원 사업에 참여한 사람들을 위한 밴드인가 싶더니 점차 확대되어 밴드의 이름처럼 ‘승용마 생산의 전과’가 되었다. 전국 각지에 퍼진 예쁜 하프링거들과 셔틀랜드포니, 웰시포니들의 자마 탄생 소식과 장수목장 관계자들이 직접 제작한 동영상과 수의 상식, 무림의 고수처럼 줄곧 말들을 생산해오신 사장님들의 실전 노하우까지 올라오는 글들의 수가 더해져 필요할 때마다 찾아보게 됐다. 부끄러운 일이긴 하나 레일라의 배란일 계산을 잘못해 교배 시기를 세 번이나 놓치고 답답한 마음에 짧게 글을 남겼더니, 곧장 간단명료한 답글과 직접 문자 메시지로 배란 날짜와 적정 교배 시기를 계산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망아지들은 쑥쑥 자라났다. 각각 6개월과 5개월령이 된 망아지들은 한글 자음의 순서대로 부르기 쉽고, 태어난 순서를 짐작 수 있도록 ‘고고’와 ‘나니’로 이름을 지었고, 말등록원에 혈통 등록도 마쳤다. ‘전문 승용마 생산’이라는 큰 포부를 안고 들여온 만큼 레일라와 플루토도 한국에서의 두 번째 자마 생산을 위해 용인의 축산위생연구소에서 교배도 마쳤다. 셔틀랜드포니의 특성상 키가 작고 질경이 작아 직장 검사와 자궁경 검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발정 반응이 육안으로 확인 가능하고, 교배 지원으로 여러 차례 시행한 교배를 통해 실패가 없을 것으로 믿어본다. 그렇게 어미말도 점점 임신 중기에 접어들고 망아지들도 어미들이랑 운동장에서 운동하며 잘 자라고 있는 듯했다.

문제를 발견한 건 추석 연휴를 앞둔 날 오후였다. 아침까지 어미 옆에서 잘 먹고 있던 고고가 오후에 나가보니 평소와 다른 표정이었다. 마장에 가면 늘 앞서 나와 반기던 녀석은 햇빛에 몸을 쭉 깔고 머리에 온통 톱밥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바닥에 뒹군 흔적이 평소와 달랐다. 정상적이지 않음을 직감한 나는 고고에게 다가가 이곳저곳 살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것처럼 일어나 나를 따라오기는 했지만 그 움직임이나 눈빛이 확연히 달랐기 때문에 산통인가 싶어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항문 주위가 지저분한 것이 설사를 한 것 같았고, 사료를 한줌 갖다 대어 보니 입으로 비비기만 하고 입에 넣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에 따르면, 산통의 여러 증상이었고, 망아지가 설사를 하는 것은 탈수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덜컥 겁이 났다. 설사를 멈추어야 한다는 생각에 급하게 가축약품점에 가서 상태를 설명하고 약을 몇 가지 받아왔다. 어린 망아지가 주사를 얌전히 맞을 리 없고, 망아지를 다루는 일이라 더욱 조심스러웠다. 가축약품점에서 알려준 대로 처치를 하고도 좋아지는 기색이 보이지 않자 바로 가까운 말수의사에게 연락했다.

이제 막 귀성길에 올랐다는 수의사는 내 절박한 목소리에 한숨을 한번 쉬더니 곧 차를 돌려오겠다고 했다. 도착한 수의사는 주사와 수액 처치를 했고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려 보자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수액 3리터는 3시간이 넘게 들어갔고 그렇게 나아지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날 밤이 되어도 다음날이 되어도 좋아지지 않았다. 설사가 멎은 대신… 배변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게다가 가스가 차는지 배가 조금 부풀어 올랐고 고고의 눈망울은 더욱 침울해졌다. 명절이니만큼 가족을 도와 음식 장만에도 힘을 거들었어야 했고 집에 찾아온 손님들을 반가이 맞이했어야 했다. 정성스레 조상님께 풍성한 한가위에 대한 인사도 드렸어야 했지만… 연휴 내내 나는 작업복을 벗지 못하고 하염없이 고고의 옆에 있어야 했다. 마사지를 해주면 좀 나아질까, 평소처럼 살살 운동을 시켜볼까, 내 멋대로 주사라도 줘볼까…. 별의별 생각과 시도들에도 차도가 없는 고고를 보며 나는 한없이 무력감을 느꼈고 원인이 무엇일까를 계속해서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고고의 배는 부풀어 오르고 이제는 열감도 느껴져 매 두 시간마다 체온을 확인했다. 밤이 깊어지면 열이 더욱 올라 39도를 넘나들었는데 그때마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밀려오는 피로감에 깜박 잠이 들어 4시간 만에 나가보니 39.6도가 되었다.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 들어와 얼음주머니를 들고나가 체온이 떨어질 때가지 문질렀다. 연휴가 다 지나가도록 고고의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고, 결국 동물병원에 입원해 수술대에 올랐다.

이제 겨우 6개월 된 아기인데 네 다리가 기계에 들려져 수술대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심경이 참 참담했다. 오늘의 개복은 곧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수의사의 한마디가 원망스러웠으나 그들 또한 나만큼이나 고고를 걱정해준 사람들이 아니던가…. 수술은 3시간이나 계속됐다. 직장으로 연결되는 대결장과 소결장이 변으로 막혀 있어 배변이 되지 않고, 가스가 차 장이 부풀어 올라 내용물을 빼내는 수술이었다. 4명의 수의사가 각자의 역할을 분담해 막힘없이 수술을 진행했고, 수술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도록 배려해준 탓에 나는 고고의 속까지 모두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런 시간들을 견뎌내고 있는 어린 고고를 바라보며 나는 말없이… 집중해서… 두 손을 꼭 잡았다. 회복실에서 만난 고고는 정신을 차리려고 기를 쓰고 있었고, 나는 그 옆에 앉아 고고에게 이름을 불러주고 코에 입김을 불어주었다. 처음 만났던 그 날처럼… 내가 왔다고… 내가 옆에 있으니 이제 무서워하지 말라고…….

수술을 마치고 회복이 되는가 싶더니만 이틀 후 장이 운동을 하지 않아 장기의 협착이 의심돼 재수술을 했고 나는 처음 개복 때와 마찬가지로 두 손을 꼭 잡고 두 번째 개복을 지켜봐야만했다. 일일이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고고의 두 번째 상황은 내가 보기에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더욱 무거워진 마음으로 늦은 밤 회복실에서 고고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나에게 수의사는 말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바라보고 있다고 해서 꼭 상황이 좋아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사람이 해줄 수 있는 방법은 여기까지이고요, 이제는 고고가 스스로 살아남아야 해요….”

얼핏 보기엔 냉정해 보일 수 있겠으나 그 상황에서의 나는 그 어떤 위로보다도 필요한 한마디였던 것 같다. 고고의 입원과 두 번의 개복 수술을 겪으면서 나는 이미 혼미해질대로 정신이 나가 있었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고고의 옆에만 있을 뿐이었다. 내 첫 망아지가 나의 보살핌이 부족해 실패를 한다면 마치 따라 죽을 것 같은 심정으로 말이다. 해줄 수 있는 일이 곁에 있어주는 것밖에 없다면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나의 신념이랄까, 고집이랄까? 그런 나에게 던져진 수의사의 그 한마디는 마음속에 큰 울림이 있었고 일상으로 돌아와 고고를 기다리기로 했다.

고맙게도 수의사는 회복되어가는 고고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보내줬다. 동영상 속 고고는 다행히도 더 이상 나빠지지 않았고 무척 수척해진 모습이지만 밥도 잘 먹고, 산책도 잘 하고 있었다. 다시 이렇게 살아나 준 것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며칠이 지나 고고를 다시 만나러 갔다.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는 따뜻한 풀밭에서 풀을 뜯고 있었고, 목장 곳곳을 천천히 함께 걸었다. 앞서 걸어가는 나의 종아리에 얼굴을 기대고 조용히 따라오는 고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제 집에 가자, 고고야….”


▲센터에서 재활승마교관으로 근무하며 재활승마용, 어린이 기승용 승용마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던 이소영 시흥승마힐링센터 과장(우측에서 세 번째)은 셔틀랜드포니 ‘고고’와의 감동 스토리, “고고야, 같이 가자”로 승마 컨설팅 수기 공모전 우수상을 수상했다.

▲고고 생후 2일차. “양수에 푹 젖은 회색의 망아지가 레일라 옆에 앉아있는 사진과 아슬아슬 일어서 있는 사진 몇 장, ‘엄마가 발견했어~ 건강한 암망아지야. 신기하다…’라는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고고의 수술 장면. “고고의 입원과 두 번의 개복 수술을 겪으면서 나는 이미 혼미해질대로 정신이 나가 있었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고고의 옆에만 있을 뿐이었다. 내 첫 망아지가 나의 보살핌이 부족해 실패를 한다면 마치 따라 죽을 것 같은 심정으로 말이다.”

▲수술 후 회복한 고고. “고고는 다행히도 더 이상 나빠지지 않았고 무척 수척해진 모습이지만 밥도 잘 먹고, 산책도 잘 하고 있었다. 다시 이렇게 살아나 준 것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는 따뜻한 풀밭에서 풀을 뜯고 있었고, 목장 곳곳을 천천히 함께 걸었다.”


글= 이소영 시흥승마힐링센터 과장
원고 및 사진 제공= 한국마사회 말산업육성본부 승마지원단
교정·교열= 이용준 기자


작 성 자 : 이용준 cromlee21@krj.co.kr
저작권자 © 말산업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