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화영 소노펠리체승마클럽 코치

윤화영 소노펠리체승마클럽 코치.
승마 컨설팅 수기 마지막 순서로 최우수상을 수상한 윤화영 소노펠리체승마클럽 코치의 ‘허리가 아파 체육시간에 교실을 지키던 여고생에서 이제는 재활승마 코치로 변신’을 소개합니다. 본 수기는 한국마사회 말산업육성본부 승마지원단이 주최한 ‘2015 승마산업 컨설팅 워크숍 수기 공모전’ 당선작으로 사업 홍보 목적 활용에 동의한 내용입니다. 그간 연재 수기를 애독해 주신 독자분들 그리고 원고 제공을 해준 박경원 현 말산업심사팀 팀장님께 감사드립니다. - 기자 말.

“유럽 말산업에서는 여성 인력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 유명한 목장장도 여성이다. 한국마사회에 시연과 강연을 위해 오는 외국인들도 여성이 많다. 이렇게 책임감을 가지고 내 평생 말과 함께하리라 결심하게 된 계기를 되돌아보면 말이 나를 성장하게 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단순히 말을 좋아할 뿐이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움츠러들기도 하고 남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단 한가지 확신하며 목표로 둔 것은 내가 있는 승마장의 말들은 행복한 말들이고, 사랑받는 말들이 되어 사람들과 사랑을 주고받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말을 대중에서 더 가까이 알리고, 여성 스포츠 지도자로 여성 인력들이 말산업에도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하길 바란다…재활승마를 통해 배운 것은 말은 사람을 대할 때 아무런 편견이 없다는 것이다. 계급·나이·지위 그 어떤 것도 말에게는 소용없다.”

나는 간호사다. 중앙대 적십자간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병원 암센터를 마지막으로 병원에서 나와 이제는 승마장에서 말을 돌보고, 승마인의 말씨앗을 뿌리며 살고 있다.

말산업에서 내 위치는 아직 한창 성장해야 하기에 지금은 치열한 고민을 하고 있다. 여성으로서 좋은 선배가 되기 위해 길을 닦아가는 선구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말산업에서는 여성 인력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 유명한 목장장도 여성이다. 한국마사회에 시연과 강연을 위해 오는 외국인들도 여성이 많다. 이렇게 책임감을 가지고 내 평생 말과 함께하리라 결심하게 된 계기를 되돌아보면 말이 나를 성장하게 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림부나 문체부에서의 승마 지원 프로그램은 많지만, 교육부 지원 프로그램은 전무한 말산업에서 경기도교육청에서 실시하는 ‘꿈의 학교’프로그램에 지원, ‘안산승마힐링 꿈의학교’에 정말 영광스럽게도 함께하게 됐다. 안산의 트리플밸리에서 승마 코치로 있으면서 겨울에 특히 운영난을 겪게 됐다. 대부분의 승마장이 그러할 것이다. 규모가 크지 않으면서 도심형 승마장이기에 12월에 새로운 기획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여겼다. 그래서 안산시청 홈페이지를 찾으면서 지역사회의 프로그램에 승마와 연결시켜 지원해 봄직한 것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안타깝게도 2014년 안산에서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관련 프로그램이 진행됐고, 공식적으로 시청에서 관련 프로그램 공모를 했다. 승마 프로그램을 지원했고…결과는 선정! 이에 힘입어서 트리플밸리에서 도보로 3분 거리의 안산초등학교와 연계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인데 세월호 이후 학교에서 안전에 대해서 매우 민감했고, 승마에 대해서도 낙마 사고에 대한 우려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학교를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역으로 교육청을 설득해 학교가 움직일 수밖에 없게 만들자는 생각에 교육청 홈페이지를 찾아보게 된 것이다.

혁신 교육에 대한 새바람으로 9시 등교를 시행한 이재정 교육감의 확고한 의지로 시행하게 된 직업 탐색을 목표로 하는 ‘꿈의 학교’프로그램 공모를 알게 됐다. 정말 두근두근 가슴이 울렁이며 뜨거워지는 순간이었다.

‘이거다!’

단순히 말을 잘 타는 것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말을 통해서 인성·생태·성 교육 등 말을 통한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오감 체험 프로그램을 짜면서 하루하루 그 겨울이 즐거웠다. 그러고 보니 내가 승마코치로 직업을 바꾼 것이 2013년 여름인데, 2014년 겨울에 말산업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시작하기에 이른 것이다.

처음 승마코치가 되어서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지만, 말들이 내 말을 잘 안 들어 줘서 속상하기도 했다. 나는 단순히 말을 좋아할 뿐이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움츠러들기도 하고 남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확신하며 목표로 둔 것은 내가 있는 승마장의 말들은 행복한 말들이고, 사랑받는 말들이 되어 사람들과 사랑을 주고받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추운 겨울에도 나는 항상 마방에 있으려고 했고, 회원들과도 클럽하우스의 따뜻한 곳에서 차 한 잔 마시며 편히 있기 보다는 말을 만지며 마방 복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말에 대한 대화를 하려고 했다.

그러한 생각이 잘 맞았는지 트리플밸리의 말들은 정말 애교가 많고 사람들을 잘 따른다. 수의사님과 장제사님들도 트리플밸리 말들이 정말 순하다고 칭찬한다. 그리고 승마장 업계에서도 트리플밸리의 말들은 믿고 입양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말이 사람을 물려고 할 때 이외에는 절대 혼내본 적이 없다. 정말 사랑스러운 아기라고 생각하고 아기 다루듯이 한다.

승마클럽 회원일 때와 승마코치가 되어 가까이서 말을 보니 말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든다. 사람을 태우기 위해 거세하고, 힘이 차다고 밥 양을 줄이기도 할 때가 그렇다. 밥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말을 타고 운동을 해서 힘이 차지 않게 만드는 것이 내 역할인데, 변명을 하자면 인력이 부족하고 할 일은 많았다.

나는 대학시절 학생 간호사로 병원에 실습을 나갔다. 학생들이 실습을 하며 말도 타고, 일도 배운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다. 독일처럼 지역 젊은이들이 승마장에서 실습하며 말도 배우고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며 그 인력이 대도시로 유입되는 것이 아니라 순환되는 형태로 진행된다. 경기도교육청이 주관한 ‘꿈의학교’도 이러한 목표도 함께 두고 있다. 자율학기제라고 해서 한 학기 동안 중간·기말고사 시험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직업 체험을 하는 것인데, 여기에 트리플밸리는 안산교육지원청과 협약을 맺어 2015년 가을학기부터 말산업을 소개하며 실습 기회를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점차 확산돼 승마장에서 교육적 역할을 수행하며 승마가 유소년부터 시작해 성장기에 말을 통해 훌륭한 심신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자신한다. 이것은 나의 경험을 통해서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중학교 때 꽤 공부를 잘해서 외고나 과학고에 입학을 할 목표를 두고 있었다. 그런데 중3학년 봄학기, 체육시간에 뜀틀을 하면서 꼬리뼈에 충격이 가해졌고 그 이후 간간히 통증이 있었지만 생리통과 맞물려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넘겼다. 지금 청소년들은 자세가 좋지 않아서 목과 허리 통증을 호소하지만, 내가 학생일 때에는 허리가 아프다고 하면 어린애가 무슨 허리가 다 아프냐며 핀잔을 줬다.

결국 잘 걷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골수에 염증이 생겨서 수술도 하고 여름방학을 병원에서 지내며 장마철 비처럼 내 마음은 눈물의 홍수로 일렁였다. 정말 활달하고 밝았는데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 것도 힘들고, 경사진 곳에 걷는 것도, 내 가방을 드는 것조차 힘이 안 났다. 내 가방을 들어주며 등하교 길에 동행해준 친구가 있었는데, 지금 그 친구는 의대를 졸업해 의사가 됐다. 그리고 나는 간호사가 됐다. 고등학교 내내 체육시간에 교실을 지키며 보호받던 내가 이제 환자들을 보호하고 간호하게 됐다.

대학생이 아니라 또 한 번 고3의 연속성 같은 대학시절은 쉽지 않았다. 그때 힘이 되어준 것이 바로 ‘말’이었다. 말을 타면 정말 신나고 스트레스가 ‘화악~’ 풀렸다. 말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다고 생각해 마방에서 말을 만지고 이야기를 하는 시간도 많았다. 단순히 취미로 승마를 하는 대학생에서 멈추었다면, 지금 이렇게 승마 코치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마사회에서 마차를 끄는 아르바이트를 해 그 돈으로 몽골에도 여행을 가서 말을 타며 승마를 통해 세계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말을 타보겠다고 결심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국어 시간에 한국어가 알타이어계 언어이고, 우리 민족과 언어의 근원을 알아보려면 몽골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학생 때 졸업 여행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몽골에 가기로 했고 이루어 냈다. 몽골에서 말을 잘 타려고 승마를 배운 것인데 막상 몽골에 가보니… 승마를 배우지 않아도 말을 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졸업 학년이던 2008년, 몽골에 이어 베이징올림픽에도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보건복지가족부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외 탐방 프로그램을 짜서 실행하는 공모전에 승마 해외 연수프로그램을 짜보겠다는 아이디어가 당선됐다. (중략) 2008 베이징올림픽 승마 경기는 홍콩에서 열렸다. 한국마사회에서 열리는 CSI 시합에 말레이시아 선수 중 대학 선수들과 자원봉사 활동으로 친해져서 올림픽도 보고 말레이시아에도 가서 그 친구들의 학교과 승마대회 및 승마장도 보고 왔다. 승마가 스포츠외교의 꽃이라고 확신하게 된 순간이었다. (중략) 잡코리아에서 대학생 탐방 프로그램에 ‘국제앤듀런스경기를 통해 한국 승마 발전 방안’이란 주제를 공모전에 제출해 당선됐다. 팀명은 ‘말馬!아톤’으로 말이 하는 마라톤인 앤듀런스를 표현했다. 대한승마협회에서 아랍에미리트 승마협회에 공문을 써주어서 두바이와 아부다비에 가서도 현지에서 협회 직원이 가이드를 해주는 혜택을 누렸다. (중략)

간호사이자 승마인으로 도핑검사관이 되어 상주 국제 대학생승마대회에 지원을 나갔다. 하지만 나는 간호학과 스포츠외교를 전공한 간호사일 뿐이었다. 항상 한 발 뒤로 가있었다. 간호학과를 졸업하던 때에 말산업에 뛰어들어 무언가 해보고도 싶었다. 외국의 경우 말 문화와 말산업 인구 대비, 말 관련 상품들이 다양했다. 그래서 마방 굴레나 재킹 등 맞춤 제작 서비스를 해볼까도 싶었다. 그런데 시장조사를 통해 알아보니, 남는 돈이 재킹 한 개를 팔아서 3천 원 남짓이었고, 과연 이 사업이 성공할까 의문이었다. (중략) 결국 말산업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냐며 간호사의 길을 자연스레 걷게 됐다. 그래도 꾸준히 1년에 1번씩 생활체육시합에 나갔다. 릴레이도 레이싱대회도 나가며 큰 활력이 됐다.

병원에서는 승마하는 간호사라며 의료진 사이에서도 꽤 유명세를 탔다. 나중에 시골 보건소에 일하면서 말 타고 왕진가방 들고 다니는 건 어떻겠냐는 주변의 농담을 들을 때에는 즐거운 상상을 했다. 병원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있을 때마다 승마장에 가서 말을 만지며 마음을 풀었다. 때로는 동료 간호사들과 승마장에 가서 색다른 팀웍을 만드는 워크샵을 진행했다.

말 타는 간호사로 휴가기간에 해외로 승마여행을 다니며 평범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던 나에게 또 다른 결심을 준 계기가 생겼다. 내가 모시던 교수님은 난소암을 이기고 난소암을 치료하는 의사였다. 나 또한 내 질병을 이기고 말을 타며 재활의학과에서 근무하며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간호하는 간호사가 되었다. 대학병원으로 옮겨 암센터에서 근무했는데, 담당 교수님께서 난소암이 재발했다. 정말 인생이 덧없다고 여겼다. 정말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코치진이 교체될 때마다 승마장은 인력으로 고생이다. 내가 어려서부터 가까이 지내던 승마장 대표님도 마찬가지였다.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과 북미재활승마교관 자격증이 있지만, 승마코치로의 경력이 전무한 내 도전에 기꺼이 기회를 주신 박 대표님께 항상 감사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철부지였다. 간호사일 때는 신입간호사를 교육하는 프리셉터 역할도 잘 수행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승마장에 놀러온 회원과 지도자인 코치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던 것 같다. 그저 말을 이뻐하고 있는 모습뿐이었다.

말을 사랑한다면, 예쁘다며 만지고 있는 것에서만 끝나면 안된다. 말의 건강 체크와 회원 관리, 주변 청결 등등 신경 쓰고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점점 그것을 알아가면서 회원들이 사용하는 화장실 청소도 하며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땀 흘리는 내 모습을 거울로 보았을 때 웃음이 났다. 정말 내가 변했구나…. 병원에서는 환자를 대하는 직접 간호의 시간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두기도 한다. 나 또한 말의 직접 간호 시간을 늘리고자 노력했다.

효과가 있었다. 수업할 때 말들이 내 말을 더 잘 들었고, 회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점을 활용해 2015전국생활체육체전의 수기 공모전에도 승마와 관련하여 글을 써서 입상했다. 한국마사회에서는 말산업현장통신원으로 선발되어 매달 보고서를 내고 있다. 처음부터 말산업에만 있던 것이 아니기에 내가 활동했던 경험과 말산업을 연결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소노펠리체승마클럽으로 근무지를 옮긴 지 1달가량 됐다. 스키장과 오션월드, 골프에 이어 승마클럽까지 종합 레저타운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타 종목과의 결합과 리조트 사업 그리고 메이온홀스라는 국제시합까지 한꺼번에 배울 수 있는 특장점이 있다. 그리고 2018 평창올림픽의 효과를 이어 무언가를 해보고 싶기도 하다. 회사 내 일본어특강에 신청해 아침 7시에 일본어를 배운다. 2020년 일본올림픽을 염두에 두고 시작했다. 강원도라는 지역적 특색에 맞춰 군인승마를 활성화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아이디어도 있다. 전교생이 16명인 대곡초 학생들이 말을 배우러 오고, 리조트의 장점을 살려 회사 워크샵의 단체 승마가 꽤 있다.

말을 대중에서 더 가까이 알리고, 여성 스포츠 지도자로 여성 인력들이 말산업에도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하길 바란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하려 한다. 부끄럽지만, 내 미약한 10여 년의 승마 활동을 고백하게 된 것은 글을 쓰고 말을 하는 말산업 종사자가 늘었으면 하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 함께 공유할 기회를 많이 만들고 나도 함께 동참하고 싶다.

말산업에서 아직도 우리는 1세대라고 본다. 이제 점점 1.5세대로 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학에서 관련 학과를 창설하고 졸업생들을 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최대 과업인 통일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말이 주는 교육적 효과를 확신한다. 재활승마를 통해 배운 것은 말은 사람을 대할 때 아무런 편견이 없다는 것이다. 계급·나이·지위 그 어떤 것도 말에게는 소용없다. 통일 후 교육 문제, 문제 사병 등 말과 함께하면 해결점이 나올 것이라고 본다.

말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거시적 시점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본다. 수상 영광을 누리게 되어 목건초 교환권을 받게 되면 트리플밸리에 드리고 싶다. 내 시작이 되었고, 꿈의 학교를 항상 응원하고 지지하기 때문이다. 2014년 여름 제주도에서 열린 한국마사회 ‘목장경영’수업을 받게끔 도와주시고 2015년 한국마사회 ‘여성장제입문과정’ 수업을 받게도 시간을 허락해주시는 등 말산업 교육 지원에 아낌없이 투자해 주시고, 꿈의학교라는 말산업계의 새로운 시도에도 지원해주시고 교장으로 정진하는 박 대표님께 이 글로 감사를 표하고 싶다. 그리고 함께해준 말들에게도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나는 허리가 아파서 체육시간에 교실을 지키는 약한 여학생이었다. 그런 내가 말의 힘을 빌려 우뚝 서게 됐다. 이제는 허리가 아픈 환자들을 간호하는 간호사가 되었다. 튼튼한 척추 역할을 해준 것은 ‘말’이었다. 이를 통해 세계를 경험하게 됐다. 그리고 이제는 말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말’을 통해 나처럼 우뚝서는 사람들, 말들을 간호하고 싶다. 그리고 그러한 나라를 만들어가고 싶다.

나는 간호사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대한민국의 간호사이자 승마인이다. 잊지 않고 정진하겠다.

글= 윤화영 소노펠리체승마클럽 코치
원고 및 사진 제공= 한국마사회 말산업육성본부 승마지원단
교정·교열= 이용준 기자
디자인·편집= 이미숙 편집기자


작 성 자 : 이용준 cromlee21@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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