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방 용산화상경마도박장 추방대책위 공동대표 특별 인터뷰

▲기자회견 말미, 지역주민들과 함께 ‘상록수’를 부르며 합창할 때 정방 대표는 홀로 눈물을 흘렸다. 함께 고생한 주민들, 대전과 김포 등 멀리에서 오신 분들을 보며 참 오랫동안 싸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이 짠해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평범한 주부에서 추방대책위 공동대표로 1,500일여 운동
반대 측이 지역주민을 ‘종북’, ‘빨갱이’ 몰아갈 때 힘들어
한국마사회, 공기업으로 도리 생각하는 정책 펼쳤으면
우리나라 사행산업, 국민과 논의 과정 없이 추진해 문제
대한민국 자본주의 근본 문제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2013년 10월 24일, 한국마사회 국정감사가 있던 날. 당시 경기도 의왕시 소재 한국농어촌공사에서 처음 만났다. ‘용산 화상경마도박장 추방대책위 공동대표’라는 직함이 어울리지 않은 평범한 가정주부는 말산업 전문 기자로 갓 입사한 필자와 평범한(?) 대화를 나눴다. 당시 두 사람은 경마는 도박이며, 여론의 힘이 무서운 시대이기에 좋은 때가 분명 올 거라 공감했다.

햇수로만 5년, 1,500여 일이 지난 2017년 6월 10일. 용산 렛츠런문화공감센터 앞 천막농성장에서 다시 만났다. ‘용산 화상경마도박장 추방대책위(이하 대책위)’가 활동한 1,500일을 기념하는 기자회견 자리. 우리 두 사람은 지난 시간 동안 많이 달라졌다. 한 사람은 경마의 본질이 ‘도박’이 아니라는 논조를 생산하는 전문 기자로, 또 다른 한 사람인 정방 대책위 공동대표는 여전히 평범한 가정주부이면서도 밝고 긍정적인 운동가로.

정방 대표는 “그때 저와 얘기했던 분이 기자님이세요? 아직도 거기 다녀요?”라며, 다행히 기억했다. 지난 5년간 도움을 못 드리고 방조한 것 같아 늘 죄스러운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고백에도 “죄스러울 것까지야…”라며 환하게 웃었다. 정방 대책위 공동대표와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 편집자 주.


- 1,500일 기념 기자회견 때 합창하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말이 1,500일이지 말로 할 수 없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많이 힘들었습니다. ‘상록수’를 부르며 합창할 때 함께 고생한 주민들, 대전과 김포 등 멀리에서 오신 분들을 보며 참 오랫동안 싸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이 짠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힘든 과정을 함께한 분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 지난 5년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있으셨다면요.
“2013년 당시부터, 직접 보셨으니까 아실 겁니다. 반대하는 측에서 우리를 향해 ‘종북’, ‘빨갱이’라는 현수막을 들고 왔었습니다. 경찰에게 명예훼손이라고 하니 내리긴 했지만, 생전 처음 보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 상식적이지 않은 일에 화가 났습니다.
주거 환경, 교육 환경을 지키는 것은 여야 그리고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운동에 함께 참여하는 목사님, 신부님, 수녀님, 용산 지역 교장단 선생님들도 계시지만 굉장히 보수적인 분들이십니다.
마사회 직원과 모 방송에서 토론한 적 있는데 ‘길거리에서 아무나 잡고 물어봐라, 학교 앞에 18층짜리 화상경마장이 들어온다는데 사람들이 정말 우리나라 얘기냐고 반문하지 않겠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비상식적인 이야기기에 잘 알리기만 하면 금방 승리한다고 생각했는데, 없는 얘기를 하고 덧씌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데 많이 놀랐습니다. 그런 부분들이 힘들었지만, 찬성하는 그분들은 주민이 아니라 마사회에서 돈 받고 한 분들이니 ‘그렇겠지’ 하고 이해가 됐습니다.”

- 세월호 문제 등 지난 4년은 비정상이 정상인 것처럼 일상화된 시기였습니다. 현장과의 소통 제스쳐를 취한 이양호 회장이 부임하고 나서 달라진 점은 있습니까. 정권도 바뀌었으니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할 만한데요.
“아이들의 교육, 미래가 걸려 있는 문제이기에 많은 분들이 공감했고 힘을 주며 함께했다고 생각합니다. 지칠 만하면 힘나는 일이 생겨 견딜 수 있었습니다.
임시 개장 당시 몸싸움이 있어 교감 선생님은 구급차에 실려 가고 아이들도 많이 다치는 등 병원 치료를 계속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당하고만 있었지요. 아직도 마사회 측에서 상해죄로 고소한 상태라 재판 중입니다.
새 마사회장이 오고서 실제 달라진 건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도, 대화도 없습니다. 가끔 직원 분들 와서 인사 정도만 했습니다. 공기업이니 새 농림부장관이 임명되면 마사회장도 바뀌는 등 영향을 안 받을 수 없겠지요.”

- 새 정부와 한국마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요.
“사실 저는 마사회가, 우리나라에서 경마를 하는지 몰랐습니다. 마사회, 하면 유도부, 탁구부가 유명하고 승마나 하는 걸로 생각했었어요. 길거리에 나오면서 사행산업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국가가 사행산업을 하는 것, 사실 그 원인은 정말 돈 밖에 없습니다. 이 일을 정말 국가가 할 일인가 생각해 봅니다.
말산업이 잘 되면 좋죠. 하지만 경마를 통해 재원을 마련한다는 것이 궁극적으로 마사회에 도움이 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말산업을 장려하는데 돈이 드니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받고 사람이 죽어나가고 도박 중독이 되어도 세수를 마련해 하겠다는 건 결국 마사회에 화살로 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책을 펼치는 데 있어서 당장 들어오는 돈 문제가 아니라 공기업으로서의 도리를 생각하는 정책을 펼쳤으면 합니다. 주민과 계속 대치하고 마사회의 이미지가 나빠지면, 직원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기에 마사회가 고민을 해보셨으면 합니다. 최고 엘리트들인 마사회 직원들도 회사가 건강하고 올바를 때 더 애착심을 가지지 않을까요. 분란이 있는 건 직원들도 원하는 일이 아니지 않을까요.
무슨 일이 터져야 나서는 건 미개한 국가나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교육, 주거 환경이 어찌될지 보이기 때문에 미리 반대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앞서가는 국가라면 사행산업 논의를 전반적으로 되돌아봐야 합니다. 소싸움, 로또 등 우리나라 사행산업 문제는 국민과 논의하는 과정 없이 국가가 직접 나서 추진했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들어오는 세수가 아니라 많은 국민이 피폐하게 되는 문제 등을 예측해서 정책을 펼치길 바랍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사행산업의 근본 문제부터 논의해야 하는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반대 운동을 하면서 다른 지역도 하나씩 막고 있습니다. 김포를 막았고(김포시는 11일 경인아라뱃길 인근 장외발매소 유치 계획을 철회했다 – 편집자 주) 충청 측과도 연대하며 고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용산 문제는 마사회에 큰 짐이 될 텐데 짐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근본적 문제를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민들 몰래 어쨌든 들어오고, 학교와의 거리를 늘리고, 찬성하도록 돈을 주고,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리고, 직원을 이용해 주민인 척하는 등의 근본 문제를 갖고 있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우리는 계속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마사회는 계속 영업이 더 힘들 것이라 봅니다.
승리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승리라는 게 우리의 승리라기보다, 대한민국이 좀 더 돈, 자본주의 등 이런 문제에 있어서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 교육 문제, 먹고살아가야 하는 국민의 고충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날 우리는 기적을 봤다. 약속의 표징, 무지개가 원형을 그린 채 하늘에 그리고 바벨탑처럼 우뚝 솟은 용산 렛츠런문화공감센터 끝자락에도 걸렸다. 오전에 내린 비는 한참 전에 그쳤는데, 모두가 신기해했다. 그간 흘린 우리 엄마아빠, 아이들의 눈물이 하늘에 맺힌 듯하다. 1,500일, 한참을 멀리도 돌아왔다.

▲광화문 촛불처럼 또 하나의 평화 운동으로 열린 이날 1,500일 기자회견에서 성심여자중학교 학생 대표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와 엽서를 정방 공동대표에게 전달했다.

▲대책위 측은 현재도 매일 천막노숙농성은 물론 금요일 오후 5시에는 천주교 미사를, 매달 첫째 주 금요일 오후 1시에는 기도회를 한다. 매주 토·일요일 오전 10시부터 낮 12시까지도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이용준 기자 cromlee21@horse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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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께 보내는 용산 대책위의 호소 편지

문재인 대통령님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용산에 사는 학부모 정방이라고 합니다.

대통령님은 기억 못하시겠지만, 2014년 세월호 가족 행진 때 마포에서도 뵈었고 2015년 국회 복도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드린 적도 있습니다. 2016년에는 학교보건법 개정 청원을 하러 간 성심여중생들이 입구에서 대통령님을 만나, 도와주십사 하소연했던 적도 있습니다.

저는 평범한 학부모입니다. 그런데 5년째 ‘학교 앞, 주거지 앞 도박장’ 반대 운동을 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국가가 도박을 사행산업이라는 명목으로 얼마나 많은 국민들을 병들게 하는지, 공기업이라는 마사회가 얼마나 파렴치하게 주민들을 우롱하고 돈으로 매수하는지도 알게 됐습니다.

17만 명이 입점 반대 서명을 하고, 서울시장, 서울시교육감, 서울시의원 전원, 용산구청장, 용산구의원 전원이 반대하고 심지어 국민권익위원회까지도 주민들의 의견에 따라 철회하라고 했음에도 마사회는 2015년 5월 31일 용산 화상경마도박장을 개장했습니다.

어떻게 개장을 찬성하는 곳이 마사회뿐인데도 강행할 수 있는지 의아했지만, 2016년 최순실, 박근혜 사태를 겪으면서 의문이 풀렸습니다. 정상이 아닌 나라에서는 가능한 일이었으니까요.

6월 9일은 용산 화상경마도박장 반대 운동을 한 지 1,500일이 됐습니다. 노숙농성도 1,235일재입니다. 교육 환경, 주거 환경을 지키기 위해 학부모, 선생님, 주민들이 이렇게 오래 싸워야 하는 나라는 정상이 아니지 않습니까?

학교 앞에 도박장이 들어오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기에, 알리기만 하면 문제가 바로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일 때 대책위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 애가 어느새 고등학교 3학년이 됐습니다.

대통령님!
지금 당장 들어오는 돈만 보지 말고 병드는 국민들을 외면하지 말아 주십시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도박 환경에 익숙하지 않도록 용산 화상경마도박장을 철회해 주십시오. 국가의 사행산업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를 시작해 주십시오.

매일 노숙 농성과 매주 집회, 미사, 기도회를 하고 있는 용산 학부모, 주민, 선생님들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올여름은 비닐하우스 같은 농성장에서 지내지 않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2017년 6월 10일
용산 화상경마도박장 추방대책위 공동대표 정 방 드림.

[2016 한국마사회 국정감사 후기 – 취재수첩] 구마지심(狗馬之心)
벌써 1,000일째입니다. 용산화상경마도박장 추방대책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천막 농성에 접어든 지 말입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2013년 10월 24일, 한국마사회 국정감사가 있던 날 한국농어촌공사 앞에서 대표님을 만났었지요. 평범한 주부, 누군가의 엄마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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