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창 굿픽처스 대표·고성규 마구간 승마장 대표 인터뷰

무용총 수렵도에서 다큐멘터리 제작 출발
고구려 말 루트 따라 기마문화 재조명
“말 문화 다큐멘터리 통해 말산업 육성에 박차가할 수 있어”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 말 탄 5명의 고구려 무사들이 사슴과 호랑이를 향해 활시위를 당기며 사냥하고 있다. 그 뒤로는 산수를 묘사한 배경이 펼쳐져 있다. 그중에도 가장 눈에 띄는 모습은 달리는 말 위에서 방향을 뒤로 틀어 사냥하는 무사이다. 파르티안 사법으로도 불리는 이 활쏘기 방식은 말과 친숙하지 않으면 구사할 수 없는 고난도의 방식이다.

무용총 수렵도에 나온 사냥 장면을 직접 재연해보겠다는 포부로 다큐멘터리 영상 제작에 나선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윤여창 굿픽처스 대표와 고성규 마구간 승마장 대표이다. 2015년 겨울부터 다큐멘터리 제작을 구상한 이들은 지난해 고구려의 기마문화와 말 루트를 고증하고 그 실체를 확인하기 위한 일환으로 유라시아 지역으로 떠났다.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험난한 환경 속에서도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던 그들을 만나 말 이야기를 나눠봤다.

-어떻게 말 다큐멘터리 제작을 하게 됐는지.
(윤여창 감독, 이하 ‘윤’) 최초 기안자는 고성규 대표님이다. 고 대표님과는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알게 된 사이로 고 대표님은 말과 말 문화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신 분이셨고, 난 제작자이기 때문에 다큐멘터리를 비롯한 다양한 영상 작품 제작에 관심이 많았다. 함께 대화를 나누다 의견이 맞는 부분이 있었고 함께 다큐멘터리 제작을 해보자는 결론에 이르게 된 거다.

(고성규 대표, 이하 ‘고’) 의기투합해 처음 목표로 잡은 건 고구려 무용총 벽화였다. 고구려 벽화에 보면 호랑이를 사냥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대부분 사람들이나 학자들은 호랑이를 잡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더라. 호랑이를 잡고자 하는 소망을 담은 상상도라는 것이다. 그래서 벽화의 사냥 장면을 직접 재연해보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고구려 무사들의 역동적인 사냥 모습을 묘사한 무용총 수렵도(사진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촬영 일정은 어떻게 됐는지.
(윤 )처음 촬영을 시작한 건 2015년 겨울이다. 무용총 수렵도의 그림을 좇아 `몽골 겨울 사슴 사냥 재연` 촬영을 시작한 거다. 그리고 작년 농림부와 외교부의 도움을 받아 투르크메니스탄으로 촬영차 다녀왔다. (사)말산업중앙회가 중간에서 도움을 줬다.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 중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는지.
(윤) 다큐멘터리를 제작을 위해 2년 동안 관련된 역사서 등을 통해 공부를 많이 했다. 그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참 많다. 그중 하나가 광개토태제는 실제로 용맹한 군주보다는 주도면밀하고 스마트한 군주에 가깝단 사실이다. 광개토태제는 자신의 강점과 다른 사람의 약점을 굉장히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군주였다. 그 당시 고구려의 말산업은 현대의 종합 IT산업처럼 가장 하이테크한 산업이었다. 말을 타는 북방 유목민족과 남쪽의 농경민족들의 사이에서 그들보다 더욱 뛰어나지 못했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제국을 건설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스마트했겠는가. 아마도 다큐멘터리에도 자연스럽게 그 내용이 녹아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올해 방영을 목표로 현재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인 걸로 알고 있다. 어떤 내용이 담겼나.
(윤) 말 그대로 고구려의 말 루트를 따라 역사적인 고증을 하는 내용이다. 대표적인 유물 가운데 하나가 ‘고구려식 등자’이다. 이 등자가 지금의 헝가리 지역에 있었던 아바르족 고분의 것과도 비슷하다고 한다. 고구려식 등자가 저 멀리 있는 유럽지역까지 영향을 미친 거다. 아바르족이 이동한 이유도 결론적으로는 고구려 등에게 밀려서 이동한 거다. 그리고 고구려를 비롯한 시베리아 유목민족들은 공통된 기마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 발생학적으로 보면 이들이 시작한 곳이 같은데 동북아의 역사는 아무르 강 유역에서 다 시작한다. 많은 왕조의 흥망성쇠와 이동이 있었지만 왕조가 이동한다고 해서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문화가 모두가 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옛 영토에 해당하는 지역의 기마문화를 소개하는 내용들도 담겨있다. 아울러, 수렵도에 나온 것처럼 우리 민족이 용맹하게 사냥을 할 수 있는지 증명해보는 내용도 담겼다.

-수렵도를 재연하는 게 가장 눈에 띌 것 같다. 촬영 과정에서 에피소드 같은 게 있는지.
(윤)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날씨 속에 고생을 참 많이 했다. 사극에서 사냥하는 장면을 보고 화살이 꽂히는 게 쉬운 줄 아는데. 실제로 해보니 쉽지 않더라. 직접 해보기 전에는 쉬운 줄로만 알았는데 실제는 너무 다르더라. 늙은 노루를 쫓아 달리는 말 위에서 활을 쏘는데 맞혀도 화살촉이 튕겨 나오더라. 장장 8시간이 걸려서야 잡을 수 있었다. 여기서 다시 한번 고구려의 기마술에 대해 놀랄 수밖에 없었다. 노루 한 마리도 잡기 쉽지 않은데 고구려 무사들은 호랑이를 잡았다니.

-고구려 무사들이 호랑이 잡는 사냥법이 있었다던데.
(고) ‘칭기즈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란 책을 쓴 미국의 인류학자 잭 웨더퍼드는 칭기즈칸이 유럽을 정복할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수렵이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수렵이 기반이 된 것이다. 칭기즈칸이 스무 살 전까지는 산속에서 숨어 살았는데 그때 많은 단련을 한 걸로 알려졌다. 그리고 수렵에 최적화된 말들이 있는데 그런 말들로 호랑이 사냥을 할 수 있었다. 보통의 동물은 호랑이 그림이나 소리만 들어도 무서워하는데 수렵 말들은 보통 말들과 근육 자체부터다 남다르다.

(윤) 야생동물이 가장 두려워하는 소리가 가공된 소리다. 무협 영화에서 보면 전쟁하기 전에 쏘는 화살을 효시라고 하는데 이걸 쏘면 소리가 난다. 그걸 계속 쏴서 말과 호랑이가 혼비백산한 상태로 계속 호랑이를 쫓아가는 거다. 화살촉도 20여 개가 있는데 다 용도가 다르다. 아까 말한 소리 나는 화살부터, 가죽을 찢는 화살 등등 여럿이다.

-수렵도에 등장하는 ‘호랑이 사냥’ 장면이 중국 문화로 묘사돼 분노했다던데.
(고) 내가 라디오 방송 출연을 통해 밝히기도 했다. 베이징 올림픽 당시 중국의 체육사를 소개하는 와중에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가 자신들의 것처럼 소개가 된 적이 있었고, 중국 영화 ‘적벽대전’에도 ‘호랑이 사냥’ 장면이 자신들의 것처럼 묘사했다. 사실 호랑이 사냥 장면은 적벽대전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런데 고구려의 것을 자기들이 한 것처럼 묘사하는 게 결국 문화공정인 셈이다. 문화부 기자들이 이런 내용을 다뤄줬으면 좋겠는데 정보도 부족하고 잘 알지 못하다 보니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 측면에서 윤 감독과 만나 함께 의기투합한 것도 있다.

▲고성규 대표는 우리 말 문화와 우리 말이 대단함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잊힌 우리 말 문화를 복원하고 알리는데 앞으로도 노력하겠다는 강한 의지도 보였다.

-올해 2부작 이후에도 후속 다큐멘터리 제작할 생각인지.
(윤) 그렇다. 일단 올해 다큐멘터리를 잘 제작해서 방영할 생각이다. 그리고 대장님과 함께 향후 우리를 넘어 전 세계를 아우르는 말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 이번 제작과정에서는 한반도에서 중앙아시아를 지나 이란 전까지 갔다. 투르크메니스탄이 이란과 국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2부에서는 북아시아에서 헝가리까지 가는 고구려 말 루트를 탐방하고 소개할 생각이다. 모로코로 해서 이탈리아로 넘어가고, 지중해 쪽으로 해서 서유럽을 거쳐 영국까지의 말 문화 여정을 찍고 싶다. 그리고 3부는 아메리카로 넘어간 말의 경로를 추적하고 싶다. 스페인의 말이 남아메리카로 넘어간 역사적 사실과 과거 알래스카가 붙어있을 당시 러시아 사하 공화국을 통해 고구려인이 탔던 말, 몽골 말, 아무르 말 등이 넘어갔다는 고고학적 사실에 기반해 말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할까 한다. 시작은 코리아 말 루트였지만 나중에는 무슨 말 루트가 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큰 프로젝트가 될 것 같고 앞으로 3년 정도는 쭉 밀고 나갈 생각이다.
내 감독 인생 전체에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건 ‘피’에 대한 즉 DNA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처음 이 다큐멘터리를 시작한 것도 말에 관심 있던 게 아니였다. 말의 이동 경로가 결국 인간의 이동 경로일 거라고 생각에서 출발한 거고, 최종적으로는 인류의 이동 경로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고) 말 문화에도 주목하고 지원도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의 말산업 육성 정책들이 산업기반 확충과 투자에 집중된 측면이 있다. 물론, 기반 확충도 중요하다. 하지만, 말 문화에 관심을 갖고 투자한다면 그 효과는 배가될 수 있다. 말 문화를 기반으로 해 각종 매스미디어가 산업을 알리면서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측면이 큰데 그 점을 간과하고 있다. 당장 사극 촬영만 하더라도 그렇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서양말들이 과거에 등장하지 않았음에도 사극에 나오는 말들은 서양말들이다. 제주도에 한라마, 제주마 등 우리 말이 있는데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거다. 일부 촬영팀에서는 안전상의 이유를 들면서 서양말을 고집하고 있는데 우리 말 100여 마리만 특수용도로 만들어서 활용하면 가능하다.
또한, 우리 말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폄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을 타면서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 말을 우습게 본다. 당장 승마장 마장에 조랑말 한 마리가 있으면 유럽 말들은 꼼짝을 못하고 우리 말이 대장 노릇을 하는데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낮게 평가한다. 비주얼적으로 서양말들보다 멋들어지진 않았지만 우리 말은 정말 대단하고 위대하다.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고 우리 말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윤) 잘 제작된 한 편의 다큐멘터리는 큰 힘을 발휘한다. 현재 정부에서 말산업 육성을 위해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 더해 왜 말산업이 필요한지 지금의 시대정신과 말산업이 어떤 연관 관계를 갖는지 국민과 정책 결정자들을 설득시킬 수 있다면 말산업은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많은 관심과 격려 바란다.

▲윤여창 감독은 잘 제작된 한 편의 다큐멘터리는 생각보다 큰 힘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에서 말산업 육성을 위해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는 가운데 말 다큐멘터리를 통해 말산업이 왜 필요한지 지금의 시대정신과 어떤 연관 관계를 갖는지 등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면 더욱 말산업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황인성 기자 gomtiger@horse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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