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달 10월 특별 인터뷰 - 이제하 작가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10월은 일 년 중 가장 감성이 풍부해지는 시기이다. 울긋불긋 물든 가을 풍경 뒤로 허전한 옆구리엔 시집 한 권이 들려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만하다. 문화의 달 10월을 맞아 ‘말’을 소재로 한 문화 예술 작품을 다루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기획을 준비했다. 첫 번째 순서로 원로 소설가이자 시인, 화가, 가수이기도 한 이제하 작가를 만나봤다. 그가 그리는 그림 작품에는 ‘말(馬)’이 자주 등장하는데 다른 작품과는 달리 달리는 말이 아닌 정적인 말이 등장한다. 문학을 비롯해 예술 전반을 넘나들며 전방위 창작 활동을 펼치는 그의 시선으로 바라본 ‘말’을 재조명하고 그의 이야기를 정리해봤다.

-문학과 예술을 넘나드는 전방위 창작자이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게 된 계기는.
멀티시대라고 해서 다양한 장르를 넘어 든다고 말한다. 그런데 난 생계 때문에 소설 쓰는 일, 삽화도 그리는 일을 하며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을 한 것이다. 소설 원고료가 형편없어 원고료만으로는 생활이 안 된다. 그런 이유들로 나뿐 아니라 많은 문인이 학교에 나가서 강의한다든지 출판사 편집위원을 한다든지 각자 부업을 갖고 있다.
난 소설도 쓰고 이것저것 하다가 영화 쪽 일도 했다. 워낙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비디오들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게 알려지면서 한 언론사에서 ‘영화 칼럼’을 좀 부탁해 온 것이다. 직접 영화를 본 얘기를 써야 했는데 소설 쓰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 그렇게 소설을 쓰다가 2~3년간은 영화칼럼을 썼다.

-미술학도임에도 시로 문학계에 등단했다.
처음에 미당 서정주 선생에게 시 쓰는 것을 추천받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동인들과 함께 활동했는데 그 무렵에 몇 차례 수상작이 당선됐다. 나이가 점차 들면서 감정이 풍부해지고, 세상을 살피게 되면서 재단하기 시작해졌고 시에서 산문으로 넓혀 소설을 쓰게 됐다. 아울러, 내가 소설을 쓰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아버지에 대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때문이다. 그게 문학을 시작한 이유이다.

-학창시절에도 문학 활동을 펼친 걸로 아는데.
원래 중학교 때부터 시를 썼다. 그 시절 ‘학원’이란 잡지가 있었는데 6.25시절 유일한 잡지였다. ‘학원’을 통해 시가 실렸고 그 시들이 한두 군데서 당선되기도 했다. 시인으로 활동하는 황동규, 마종기 등이 당신 ‘학원’을 통해 활동하던 동문들이다.

-최근에는 소설을 쓰지 않고 있던데.
생활을 위해 이것저것 하다 보니 소설이 주력이 됐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소설을 읽지 않다 보니 잘 안 쓰게 되더라. 사람들이 책을 안 읽으니 안 팔리고 출판산업이 불황이다. 젊었을 시절에는 열정과 함께 끈기 있게 의지력으로 썼었는데 책이 팔리지 않아 생활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게 문제다.

-문학뿐 아니라 문화 전반적으로 어렵다고 하던데.
우리나라 문화 쪽이 큰 문제이다. 문화 쪽 종사하는 사람들이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해서 생활이 돼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고 팔아서 생활을 해야 정상적인 거다. 그런데 과도기 자본 사회에서는 그게 힘들다. 현실에서 그림이 팔리는 작가들은 몇 안 된다. 인기 작가들이나 유명한 원로 작가, 작고한 이들의 작품은 팔리는데 젊은 작가들의 그림은 팔리지도 않는다. 문화가 전반적으로 어렵다. 문재인 정부가 문화 쪽에 신경을 쓰긴 쓰는 것 같던데 아직 많이 모자라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문화 종사자들 소득 수준 자료만 보더라도 연 소득 천만 원도 안 된다. 새삼 힘이 빠지는 부분이다.

-외국의 경우는 좀 어떤가.
외국도 비슷하긴 하다. 하지만, 고정 독자층과 소비층이 있어 최소한의 생활은 유지한다. 일본만 보더라도 장르가 뚜렷해서 대중매체를 통한 소비가 나름 활발하고 순수문학 나름대로 고정 독자가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문학인, 예술인들은 찢어지게 가난하게 산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인 수요 인구가 없다. 작품 활동을 통해 최소한의 생활은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쪽은 순수문학은 다 잊어먹고 생각도 안 하려고 한다.
신경숙 작가 스캔들도 이런 문제의 연장선에서 일어나는 거다. 완전 순수문학도 아니고 대중적인 것도 아닌데 급해서 사단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지금 책이 잘 나가는 작가들도 거의 없다. 옛날처럼 말이다. 많이 나 봐야 10만 부 정도.

▲‘문밖의 말’이란 작품에는 문밖에서 들어온 말이 여인과 대면하는 장면을 그렸다. 이제하 작가는 이 작품은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메시지를 담을 수도 있고, 여성과 수컷 말이 함께 등장함으로 인해 이질적인 존재가 마주 섰을 때 묘한 느낌이 생기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모란동백’이란 곡을 작사·작곡하기도 했는데.
사실 약간은 우스꽝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소설을 써 받는 원고료보다 재미 삼아 작곡했던 ‘모란동백’의 음원 저작권료가 먹여 살리고 있으니 말이다. ‘모란동백’을 만들 때 애들 장난 말로 저지른 짓인데 참 아이러니하다.

-대학로에서 카페 ‘마리안느’를 운영하고 있다. 이 공간은 어떤 공간인가.
문화공간을 표방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영화를 상영하기도 하고 그림 전시회를 하기도 하고 다양한 문화 활동을 펼친다. 예전까지는 그냥 카페였는데 벽을 조금 뜯고 넓혀서 그림을 전시해 놨다. 그래야 화려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 이야기를 좀 하겠다. 이제하 작가의 그림에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작품 속에서 ‘말’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냥 단순하게 그 동물이 좋아서 그린 건데 거기에 해석을 붙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냥 ‘야생’, ‘자연의 힘’ 같은 걸 끌어들이고 싶어서 그렸다. 보통 말 그림은 들판에서 달리는 말 그림이 많다. 고서에도 그렇고 외국 그림에도 그렇다. 특히 동양화 쪽은 들판에서 달리는 말을 많이 그린다. 그런데 들판을 달리는 말을 똑같이 그리려다 보니 재미가 없더라. ‘말’은 워낙 들판에서 달리기를 좋아하고 잘 달리는 동물인데 그걸 그냥 1차원적으로 그림에 평면화시키니 긴장감도 없어지고 별거 없었다. 그리고 달리는 말이 오히려 그리기도 쉽다.
내가 그리는 말들은 달리는 말이 아니다. 이걸 실내에다가 그려다 놓으니깐 이상하게 긴장감이 생기더라. 실내 공간과 바깥의 야생적인 말의 힘이 합쳐지니 말이다. 거기에다가 가끔 그림 속에 여인을 등장시키면 긴장감이 더욱 생기더라. 힘차게 달릴 것 같은 고속 머신 자동차가 꽉 막힌 공간에 있으면 더 긴장감이 생기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 의도로 그리고 있다.

-이제하 작가의 말 그림에 해석을 다는 사람들도 있던데.
내 말(馬)에 따로 해석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떤 이는 정신분석적으로 들어가서 내 말 그림을 보더니 ‘리비도’라고 하더라. 그런 해석을 듣고 보니깐 나중에 왜 말을 그리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런 대답을 곁들여 해줬더니 재미있어하더라. 사실 자연적인 에너지를 실내 공간으로 집어넣어서 거기서 생기는 긴장감을 어떻게 해볼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말이다.

-정유라의 ‘말’ 때문에 작년 말부터 지금까지도 시끄러운데.
정유라는 말을 탈 자격이 못 된다. 말을 타봤자 말의 정신적인 생명력을 제대로 느낄지는 의문이다. 말을 많이 탔으니 말을 타는 재미는 느끼고 말 타는 게 뭔지는 알 거 같지만, 말에 감동하고 감사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제하 작가에게 ‘말’에 대한 이미지는 어떤지.
힘이 느껴지고 순수함이 느껴진다. 동물이 모두 그런 느낌이지만 말이 더욱 그렇다. 다른 동물들은 어느 순간에는 사람에게 아첨한다는 느낌이 들지만 말은 그런 느낌이 없다. 그게 더욱 매력적이다.

-‘말’을 통한 인간성 회복이 가능할지.
자연에 더욱 공감을 해야 한다. 자연의 생명력을 인정하고 거기에 가까이 가야 치유가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학은 주고받아야 하는 거래 관계로 문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제하 작가는 ‘말’에게는 힘과 함께 순수함이 느껴진다고 한다. 다른 동물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말은 아첨하는 듯한 느낌이 없어 더욱 매력적이라고 한다.

황인성 기자 gomtiger@horse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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