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닉 스켈톤’을 꿈꾸는 황순원 선수 인터뷰

[말산업저널] 황인성 기자=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2012 아테네 올림픽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이며 한국 승마를 이끌어가고 있는 황순원 선수이다. 40대 중반의 나이는 다른 스포츠에서는 노장 또는 은퇴를 맞이할 나이지만, 승마에서는 40세부터 전성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왕성히 활동할 나잇대다. 현재 승마선수이자 지도자로 왕성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황순원 선수를 만나 직면한 승마계 현안과 그가 걸어온 승마 이야기를 엮어봤다.

-황순원 선수 하면 아테네 올림픽이 떠오른다. 당시 출전권 획득이 쉽지 않았을 텐데.
일단 올림픽 출전 티켓 자체를 따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올림픽 출전 티켓을 따는 시합을 가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한두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그랑프리에서 일정하게 좋은 성적을 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당시 함께 올림픽을 목표로 훈련하고 있는 선수들도 올림픽 진출이 현실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스스로 갖고 있었다. 당시 감독님과 코치님들, 후원사도 마찬가지 마음이었을 거다. 세계의 벽은 너무 높았고, 한국 승마는 그에 비하면 한참 뒤처져 있었다. 그리고 본래 승마경기라는 게 선수들만 컨디션이 좋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고, 말들의 컨디션도 따라줘야 했기 때문에 올림픽 출전은 꿈만 같았다. 아마도 우리의 간절한 바람과 노력이 겹쳐지면서 티켓을 획득하게 된 것 같다.

-당시 ‘씨챕’이란 말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최근 열린 승용마 경매에서 ‘씨챕’의 자마들이 인기를 끌기도 했는데 어떤 말인지.

내가 ‘씨챕’을 처음 만났을 때 9살이었다. 말 품종은 홀스타이너로 크고 듬직한 느낌의 말이었다. 덩치와는 맞지 않게 아주 사소한 것에 겁이 많아 바닥에 매트 같은 게 깔려있다든지 조금만 이상하다 싶으면 무서워했다. 겁먹기 시작하면 끌고 다니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보통의 홀스타이너 치고는 성격이 온순했다. 그것도 사람한테만. 다른 말 특히 수말에게는 아주 공격적이었다. 평보로 지나가다가 마주치기만 해도 앞발을 들어 던질 정도로 말이다. 사람한테는 아주 착했지만, 말들에게는 아주 까칠했다.

-수많은 말들을 거쳤겠지만, 기억나는 다른 말은.
‘릴리브로’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씨챕’과 같은 시기에 탔던 말로 내 세컨드 말이었다. ‘릴리브로’는 분명 좋은 능력을 가진 말이긴 했는데 약간은 게으른 면이 있었다. 그래서 장애물을 넘을 때 장애물을 잘 건드리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내게는 의미가 깊은 말이다. 각종 유럽 시합에서 출전해 마일리지를 쌓는 데 큰 공헌을 해준 말이기 때문이다. 올림픽 당시 예비마로 등록되기도 했다. 나중에 한국에 들어와서 활동을 했다.

-승마의 매력은 무엇인가.
일단 사람보다 훨씬 덩치가 큰 동물을 탄다는 것과 사람의 작은 신호를 받아들이고 움직인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가장 큰 매력 같다.

-승마는 언제 어떤 계기로 입문했나.
초등학교 4학년(1983년) 때 입문했다. 내가 TV에서 말이 나오면 엄청 좋아하고 했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승마장에 한번 놀러 가보자고 해서 갔다. 말 똥냄새와 승마장 냄새가 되게 불편하면서 좋았다. 그리고 말에 올라갔는데 무서우면서도 한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이 들어서 주말마다 취미로 타기 시작했다.

-가족도 함께 승마를 즐기는 걸로 알고 있다.
아내는 학생 때 몇 년 승마 선수로 활동했었다. 몇 년을 아주 열심히 타서 내가 D클래스 뛸 때 아내는 S클래스를 뛰었다. 지금은 선수로 활동하고 있지는 않다. 딸은 고3인데 발리오스승마클럽에서 마장마술 양성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물 선수로 활동 중인데 마장마술도 했었나.
아주 짧은 기간 하긴 했다. 마장마술 전문 승마장에도 조금 있었고, 장애물 선수도 기본적인 마장마술은 배워야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종목은 아니다.

-승마를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어떤 말이 좋고 어떤 선수가 잘하는지 보는 것은 전문가 수준의 눈이 필요하지 않다. 어린아이들도 보면 충분히 잘하는지 못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다 같이 못 하는 사람이 여럿 있을 때는 누가 잘 타는지 알아내기 힘들다. 그럴 때에서야 전문가들의 판단이 필요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장애물에서는 당연히 높게 잘 뛰고 빠르게 뛰는 말이 좋은 말이다. 마장마술에서는 움직임이 크고 동작이 마치 춤추는 것 같은 말이 좋은 말이다. 선수는 말 위에서 별 요동 없이 잘 얹혀 있는 게 잘 타는 사람이다. 승마를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황순원 선수는 최순실 사건 이후 승마계가 직면한 위기를 최근에는 더욱 체감한다고 말했다. 매년 20~30명 씩 나오던 학생 선수가 올해부터는 거의 나오지 않고 있고, 이런 여파가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우려스럽다고 한다.

-승마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지.
연예인은 끼가 있어야 된다고 한다. 승마 선수도 마찬가지로 끼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분명 끼가 있는 사람들이다. 승마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거나 배울 수 있으면 최대한 해보는 걸 추천한다. 다양한 영역에서 우리나라는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어떤 분야는 세계 탑을 달리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후배들이 우리는 안 된다는 생각보다는 우리니깐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한국 승마의 위기라고 한다. 체감하는지.
일단 지금이 한국승마의 위기는 분명 맞는 것 같다. 당장 지도자로서 지도할 학생이 없다는 사실이 가장 큰 문제이다. 많은 선수가 배출되고 더불어 발전이 이뤄져야 하는데 최순실 사건 이후 새로 나오는 선수가 없다. 전문체육 선수들에게는 생계와도 직결된 문제이다. 그리고 이런 여파가 얼마나 지속될지 아무로 모르니 더욱 답답하고 두렵다.

-그럼 현재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어떤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우수한 인재들이 승마를 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대한승마협회 차원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새로운 대학교에 승마부를 창설토록 노력하는 것부터 상무 체육부대를 재가동시키는 것 등이 있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좋은 승마대회를 많이 만드는 것이다. 상금이 높은 시합을 유치하면 우수한 선수가 더욱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자연스럽게 승마를 하려고 하는 학생들도 늘어난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이 선수들의 성공사례를 보고 좆아가려는 어린 꿈나무들도 나오는 거다. 승마도 똑같다고 보면 된다.

-손명원 대한승마협회장이 승마계가 힘을 합쳐 비전을 제시한다면 기업들도 자연스럽게 후원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난 부정적으로 본다. 지금 시점에서 어느 기업이 승마에 후원하겠나. 좋은 분위기 속에서도 지원받기 힘든데 승마와 연관된 기업과 기업인들이 표적이 된 마당에 공식적으로 투자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회장님의 능력을 발휘해 좋은 스폰서를 찾아주면 아주 좋은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일선 현장의 선수들은 어떤 우려를 품고 있나.
일단은 당장에 내년에 쓸 예산을 어떻게 마련을 할 것이냐가 큰 걱정거리이다. 지난해 대회 참가비가 2만 원에서 5만 원으로 인상된 것도 우리가 스폰서가 없는 관계로 우수한 선수나 말에게 상금을 보태서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건데 지금 이대로 가다가는 대회 참가비를 협회 운영비로 써야 할 처지이다.
그리고 협회가 선수들에게 아무런 소식을 전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사회나 대의원 총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선수들에게 투명성 있게 공개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데 전혀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말로만 선수를 위한 협회라고 하는데 아직도 옛날 세력들의 정치적인 싸움의 무대이고, 위에 있는 사람을 끌어 내리기 바쁘다. 선수들 입장에서는 전혀 발전적이지 않은 분위기이다. 더 이상 추락할 수 없는 협회의 상황에서 이번 기회에 더욱 쇄신하고 발전을 이룰 수 있을지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불만사항이 있다면.
각 대회의 시합 방식을 결정할 때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의문이 든다. 지금 현재 협회에 전무도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 막 임의적으로 시합 방식을 정하는 것 같다. 지금 같은 상황이면 선수협의체에 물어보든지 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선수들을 배제한 협회 운영은 아쉽다.

-해외 선수 가운데 롤모델로 삼고 싶은 선수는.
좋아하는 선수는 굉장히 많다. 그중에서도 캐나다 출신 ‘이안 밀러’와 영국의 ‘닉 스켈톤’을 좋아한다. ‘닉 스켈톤’ 선수는 환갑의 나이에 리우올림픽에서 최고령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나도 건강 관리를 잘 해서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이다.

-다음 주 故 김형칠 선수 추모식이 열린다. 참석할 예정인지.
당연히 참석할 거다. 시합 당일 아침까지도 서로 보고 인사했는데 시합장에 도착하자 사고가 났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갔다. 너무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고, 남은 시합을 포기했다. 정말 그때는 말 타기도 싫었고, 여전히 가슴 아픈 기억이다. 특히, 故 김형칠 선배는 항상 후배들에게 잘 대해준 분이셨는데, 그런 인간적인 면모에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많이 그립다.

-이미지가 많이 변하긴 했지만 여전히 승마가 돈 많은 이들의 스포츠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데.
승마를 제일 쉽고 편하게 배울 수 있는 건 돈을 많이 쓰는 게 맞다. 남보다 비싸고 좋은 말을 사고, 훌륭한 트레이너를 붙이면 쉽게 갈 수 있다. 하지만, 꼭 그것만이 승마를 배우고 하는 법은 아니다. 외국에서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선수들 가운데 실질적으로 본인이 부자라서 성공한 선수는 별로 없다. 모두 다 힘들게 일하면서 배우고, 자신의 재능을 계속 계발시켜 나간다. 그런 과정에서 실력을 쌓다가 좋은 스폰서를 만나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거지 재력을 앞세워 성공하는 탑 선수는 몇 안 된다. 결코 좋은 말만 산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하노바 승마장’을 운영하고 있다. 어떤 승마장인가?
‘하노바승마장’은 사람보다 말이 좋아하는 승마장이다. 위치가 조금 멀다는 이유로 사람은 약간 싫어할 수 있는데 말들은 편하게 느낀다. 다른 데에서는 신경질적인 말들도 이곳에 와서는 스트레스도 덜 받고,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붐비지 않는 환경 속에서 조용히 운동에 집중할 수 있는 승마장이다.

-끝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하루빨리 멋있는 승마대회를 개최하고 승마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좋겠다.

▲40대 중반에 접어들며 한국승마의 허리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황순원 선수는 지금이 한국승마의 위기라고 말했다. 현재 직면한 위기를 발판 삼아 더욱 쇄신하고 발전을 위해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황인성 기자 gomtiger@horse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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