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팬에 신뢰받는 공정 경마로 ‘한국더비경주’ 창설 꿈꿔
질적·내면적 어려움과 풀어나갈 과제에 대한 대비책 있는지

한 나라 경마 수준 가늠하는 바로미터는 ‘경마 시행 계획’
5년, 10년, 20년 지표 담은 ‘중·장기 경마 계획’ 절대 필요

11월 초, 경마 올림픽이라 불리는 브리더즈컵(G1) 경주에 해외종축사업인 케이닉스(K-Nicks)로 선발된 경주마 ‘닉스고’와 ‘미스터크로우’가 출전이 확정됐다는 기쁜 소식을 접했다(편집자 주 - ‘미스터크로우’는 훈련 중 부상으로 최종 출전이 좌절됐다).

경마 현장을 떠난 지 어느덧 8년이 지났다. 이젠 자연인의 한사람인 필자가 30여 년간 재직 중 꿈꿔왔던 ‘한국경마의 국제화’를, 지금 그 꿈을 후배들이 이뤄가는 모습을 바라보자니 그저 흐뭇할 따름이다.

26년 전 필자가 2년간의 일본중앙경마회(JRA) 연수를 마치면서 JRA사내보(다떼가미)에 연수 소감과 함께 한사람의 경마인으로서의 ‘꿈’을 게재한 글이 생각났다.

“경마는 말의 문화·산업인 만큼 선진 경마의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산업의 근저(根底)로서 국내산마 생산·육성, 혈통기관 설립, 개인마주에 의한 경쟁 원리를 도입해 ‘경주마의 자원 확보와 자질 향상’을 도모하고, 경마팬에게 신뢰받는 ‘공정 경마 시행’을 바탕으로 ‘한국더비경주’를 창설, 20년 후 일본의 재팬컵(G1)에 참가한다….”

단일마주로 생산도 시험 단계였던 당시로써는 현실성이나 가망성(可望性)이 전혀 없어 보이는 요원한, 야무진 꿈이었다. 그 후 26년이… 흘렀다. 모두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이젠 ‘두바이월드컵*’에 출전하고, ‘브리더즈컵**’ 출전을 목전에 두고 있으며, 렛츠런파크 서울에서 세계의 준마들이 ‘코리아컵’에 질주하며 환호를 듣고 있노라니, 이 어찌 감격스러운 모습이 아니겠는가!

여기서 필자는 한국경마 발전의 발자취를 더듬어봤다. 몇 년 후면 한국경마도 100년의 역사를 맞게 된다. 1922년 일제강점기에 유화정책(宥和政策)의 일환으로 도입돼 1945년 해방 후 신설동과 뚝섬 시대를 ‘제1의 물결’로….



1983년 마권 발매 전산화, 1989년 과천경마장 이전, 제2 지방 경마 시대 개막으로 ‘제2의 물결’을 일으켰고, 1993년 ‘국산마 생산 중·장기 추진’과 ‘개인 마주 전환’은 한국경마의 획기적인 전환 계기로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고 이뤄낸 ‘제3의 물결’이었다고 회상한다.

1993년 제도 전환 당시 한국경마의 가장 커다란 난제였던 ‘공정 경마 시행, 자율적 경쟁 도모, 선진·국제·산업화를 위한 자국 생산 기반 확충 및 경마문화 창달’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마 본연의 모습인 말의 개인 소유(개인마주)와 국산마 생산으로 귀결된 결론이었다.

자연 발생적으로 말을 중심으로 한 경마의 사이클(생산→육성→경주→번식)이 ‘말산업과 문화’로 발전해온 선진국과는 달리 단기간에 ‘한국적 마주 제도’가 탄생해 마주도, 생산자도, 말 관계자(조교사·기수·관리사) 모두가 자율경쟁체제라는 변화에 적응하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지금 한국경마가 ‘가고 있는 길’은 어디며, ‘가고 싶은 길’은 어떤 곳이며, ‘가야 할 길’의 확실한 방향과 목표는 설정되어 있는가에 대해 자성(自省)하는 의미에서 전환 당시의 난제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먼저, 공정 경마는 시행되고 있는가? 불공정 경마와 사설 경마는 일소돼 경마팬의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는지…. 자율적인 경쟁성은 확보됐는가? 말 관계자의 경쟁성 강화를 위한 경주 체계와 상금 수준은, 생산·육성의 안정적 발전에 기틀은 마련돼 있는지…. 경마의 선진·국제화를 위한 인마(人馬) 교류, 개방에 따른 대책 등은 철저히 세워져 추진되고 있는가?

경마산업의 기반인 생산·육성의 질적 향상은 이뤄졌는가? 경주마의 생산·육성 체계는 선진국 수준으로 경주 체계의 안정적 발전을 꾀할 수 있는가? 등에 대해 어느 분야 하나라도 호평(好評)하기에는 아직 이른 현실이지 않은가!

지난번 두바이월드컵 시리즈 경주에 국내산 경주마가 출전해 관심을 모았었고, 우리의 경주 실황이 외국(싱가포르·뉴질랜드 등)에 수출돼 방영되고, 외국인 기수·조교사에 이어 마주까지 개방해 한국경마 수준이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국제경주마세일명부」에 PARTⅡ로 한 단계 승격하는 기쁜 소식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한국경마의 양적·외형적 발전에 발 맞춰 질적·내면적인 어려움과 풀어나갈 과제에 대한 대비책은…, 모든 경마 관계자와 각 단체는 합목적(合目的)에 일심단결하며 나아가고 있는가…. 이에 대한 확신을 갖고 답하기에는 누구도 자신이 없을 것이다.



필자는 그 나라의 경마 수준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는 ‘경마시행계획’이라고 생각한다. 경마계획서는 경마를 시행하는 시행체의 경마 시행 지침이나 방침으로서 경마문화를 정착, 발전시키는 경마에 관한 일련의 백서라고 할 수 있다.

이 계획에는 경마 시행과 관련한 일련의 과정을 한 경주, 1일, 한 달, 일 년간 세부 사항이 발표되는데 특히 상금의 규모, 세부 배부 기준 등이 포함돼 모든 관계자(시행체·경마 관계자·경마팬 등)는 이 계획에 따라 경마를 준비하고 관전하게 된다. 경마시행계획의 내용은 대별하면, 세 가지로 분류하는데 △상금 체계 △경주 체계 그리고 △부담중량 체계로 구분한다.

가장 중요한 상금 체계는 상금의 규모나 배분 기준 등의 세부적인 내용으로 경주마 수준, 생산·육성에 이르기까지 경마를 산업으로 이끄는 젖줄이기 때문에 매년 각 단체가 상금 규모나 분배 기준에 대해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경주 체계는 어느 경주(일반·특별·대회)에 어느 말(국·외산, 연령·성별)이 언제 출전하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부담중량 체계는 중량에 따라 경주의 성격(한 예로 3세 더비; 정량, 별정, 일반 경주; 마령, 레이팅)을 알 수 있어 경마팬의 흥미를 제고하는 등 경마시행계획에는 모든 경마시행체의 ‘경마 발전에 대한 정책’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경마는 생산→육성→경주→번식이라는 산업을 이끄는 동력으로 현재 매년 발표하는 1년의 계획은 물론 5년, 10년, 20년의 지표를 담은 ‘중·장기 경마 계획’이 절대로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마사회(KRA)는 3년 또는 1~2년에 한 번씩 바뀌는 정책권자가 한국경마의 중·장기적인 비전과 발전 방향을 제시하기보다는 눈앞의 성과 위주 정책과 이에 편승한 근시안적인 업무 처리가 못내 아쉬운 한국경마의 현실이라 생각한다.



작년, 본부장으로 승진한 후배에게 한국경마 발전을 기원하면서 ‘2030년 브리더즈컵 클래식 우승마, 백한(白漢, 백두산과 한라산을 의미)’ 한 마리를 묵화로 그려 선물한 적이 있다. 한국경마의 100년을 근간(根幹)으로 자리 잡은 제3의 물결이 향후 10년, 20년 후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가는 제4, 제5의 물결로 이어지길 바라는 경마인 한 사람으로서 응원을 보내며 30년간 변함없는 JRA의 ‘경영 기본 방침’을 소개한다.

<`JRA 경영의 기본 방침`>
JRA는 매주 계속 달립니다.
· 고객과 함께
· 꿈과 감동과 함께
· 신뢰와 함께
· 사회와 함께
· 그리고 미래로… 우리는 전통 있는 경마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국제적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로서의 경마를 여러분과 함께 창조해 가고 있습니다.

*두바이월드컵: 1996년 창설, 당시 단일 경주 상금 600만 달러라는 세계 최고를 지향한 대회.
**브리더즈컵: 1981년 창설, 경마올림픽이라 일컫는다. 현재 2일간 연령·경주거리·경주로(더트, 잔디)별로 최고의 경주마를 선발한다.

저자= 석영일 전 한국마사회 심판처장

교정·교열= 이용준 기자 cromlee21@horse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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