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승주의 경마공원 산책
경마팬들은 기수와 조교사들의 세계를 무척이나 궁금하게 생각한다. 말과 승부의 관점으로도 그렇지만 일반 생활인으로서도 그렇다. 기수와 조교사의 세계는 매우 단조로우면서도 폭이 좁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것은 승부의 세계가 그들에 삶의 방향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아마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세대에도 이러한 삶의 구도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나 또한 기수와 조교사시절 가까운 학교친구나 고향친구들과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지냈다. 경마가 열리는 날이 주말이라 일반 사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주말에 만날 수 없다는 것이 그들과의 친밀감을 유지할 수 없는 이유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차지하는 이유는 사실 매우 적다. 무엇보다 커다란 이유는 승부의 세계에서 생활하는 자신들이 스스로 움츠리는 면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를 기수와 조교사의 세계에서 생활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조금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찌 보면 그들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말의 고삐를 잡고 있는 기수나, 기수와 말을 관리하는 조교사에게 호시탐탐 소위 말하는 ‘소스’(경마정보)라도 얻을려고 눈들이 빨간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보니 경마세계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가까웠던 사람까지도 그들과 비슷한 사람들일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경마세계에 발을 들여 놓기 전과 같은 친밀도를 유지하고 지내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이유는 기수와 조교사의 직업에 대한 수명과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강한 자기 방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동료나 선후배들이 경마부정과 관련하여 옷을 벗고 떠나는 모습들을 보면서 자기생존 방법을 찾기 위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나도 지금은 승부의 세계를 떠나있지만 다시 조교사의 길로 가지 않고 필드에 남아 있게 된 여러 이유 중의 하나가 인간관계를 폭넓게 가질 수 없다는 것도 크게 작용하였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사회 각계각층과의 폭넓은 인간관계를 일정부분 포기하지 않고는 조교사의 길을 가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기수는 기수들끼리, 조교사는 조교사들끼리 인간관계를 형성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생기게 된다. 이러한 결과들이 다음과 같은 조교사들의 친밀도를 만들어 놓았다. 우선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에서 군림하고 있는 신우철조교사의 계보이다. 나는 몇 년 전 원고를 기고하면서 이 계보를 신우철파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신우철조교사를 위시하여 유재길, 김윤섭 조교사 라인은 조교사협회의 대표적인 라인이다. 여기에 손영표, 박윤규 조교사도 어느 정도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또 다른 대표적 라인이 최상식 라인이다. 여기에는 최봉주, 정호익 조교사가 그를 따르고 있다. 이들 이외에 하재흥-서범석, 배대선-강명준, 박천서-서정하, 김춘근-정지은, 우창구-김효섭 조교사의 관계는 매우 끈끈하게 이어져 있다. 대다수의 시간을 마구간에서 지내는 조교사들에게 서로는 위안이 되곤 한다. 이들은 제주나 육지에 신마를 구입할 때도 같이 다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교병필패(驕兵必敗-능력만 믿고 자만하는 병사는 반드시 패한다)를 교훈삼아 신예마를 고를 때도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거나 자문을 구하곤 한다. 나는 이러한 조교사들의 친밀관계를 쓰면서 현직 조교사들에게 누(累)가 되지 않을까 하고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그 이유는 각 조교사들 간의 계파가 크게 형성되어 있는 것처럼 비쳐지지 않을까하는 것이 첫째 이유이며, 두 번째 이유는 이렇게 친한 조교사들이 같은 레이스에 말이 출전하게 될 때 경마팬들은 필요이상으로 확대해석하기 때문이다. “누구와 누구는 친하더란다. 그래서 누구 말은 가고, 누구 말은 안간다더라”, “오늘은 둘다 모두 승부한다더라” 또는 “둘 다 승부를 하지 않는다더라” 이처럼 경마팬들은 스스로 시나리오를 쓰고 주연과 조연을 그들 마음대로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경마의 세계에서는 아버지와 아들도 사이가 나빠진다고 하는 속설이 있지 않은가. 부모와 자식 간에도 승부에 있어서는 양보를 할 수 없는 것이 경마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경마세계는 가깝다는 이유로 승부를 양보하지는 않는다. 더욱이 개인마주제인 현실에서는 친하고 가까움이 자기 밥줄을 앞서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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