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승주의 경마공원 산책
몇 주 전 경주중 기수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관하여 글을 실은 적이 있다. 이번에는 경주중에 겪게 되는 일들 중 기수에게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인지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기상청만큼이나 일기에 예민한 것이 말을 타는 기수들이다. 사계절 중 기수들이 가장 싫어하는 계절은 겨울이고 그다음이 여름이다. 겨울은 추위 때문이고 여름은 비 때문이다. 내가 막내기수 시절에는 영하 15도의 날씨에도 새벽조교를 할 때 장갑을 끼지 못했다. 장갑을 끼면 군기가 빠졌다고 후배기수들을 집합시켜 선배기수가 군기를 잡고는 하던 때가 있었다. 기수들이 날씨에 민감한 것은 어찌 보면 직업에서 오는 당연함이라고 할 수 있다. 여름에 기수에게 가장 큰 고충은 경마일에 비가오거나 그 전날 비가 온 경우이다. 경주로가 비에 젖어있다 보니 앞말의 발굽에서 튀어오르는 모래 때문에 시야에 방해를 받게 되는 것도 있지만 눈 속으로 모래가 튀어 들어가는 것이 더욱 고통일 수 있다. 보안경을 두서너개 착용해서 안경을 한 두 차례 벗기다 보면 눈은 물론 팬티 속까지 모래가 들어가곤 한다. 일부 기수들 중에는 이빨이 튀어 오는 모래에 부딪쳐 깨어지거나 부러진 기수들도 있다. 이런 날에 경주를 하고 다음날 잠자리에서 일어나 보면 양쪽 눈가에 모래알이 여러개 밀려나 있고 귓속에서도 모래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비가 내리면 방수가 되는 기수복색을 입는다. 하지만 많이 내리게 되면 속옷은 물론 장화 속까지 물이 들어가 양말까지 젖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연속해서 경주에 출전하지 않게 되면 샤워도 하고 속옷과 기수복색도 여유를 가지고 갈아입을 수 있지만 연속해서 경주에 출전하게 되면 숨이 찰 정도로 허덕거리며 다음 준비를 해야 한다. 여자 기수들의 경우는 속옷이 비칠 수도 있어 더욱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 칼라풀한 색깔의 속옷은 가능하면 입지 않는다. 여름보다 겨울은 더욱 고통스럽다. 새벽훈련을 할 때는 그나마 방한복과 방한화를 착용하지만 경주에서는 체중을 맞추다보니 내복은 전혀 입지 못하고 팬티만 입은 채 기수복색을 입는 기수들이 대다수다. 또한 얇은 장화를 신게 된다. 기수들 몸에는 지방질이 거의 없어 추위에 약하다. 내의도 입지 못하고 달리는 말위에 있다 보면 추위와도 싸움을 해야 한다. 막상 경주를 시작하면 어느 정도 추위를 잊게 되지만 예시장에서부터 경주 출발전까지는 추위를 몸으로 모두 느낄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기수들은 발톱이 성한 것이 없다. 말에 밟히거나 동상에 걸려 그 결과들이 고스란히 발톱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추운 날은 손이 곱기 때문에 말을 당기는데 어려움이 있다. 경주중 말이 끌고 내달리면 어느 정도 힘의 안배를 위하여 말을 당기면서 기수가 원하는 속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말을 타는 모습만 보면 기수라는 직업이 화려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고통이 따르며 그것을 직업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한다. 나도 추위를 무척이나 잘 탔다. 다른 기수들에 비해 체중이 적게 나가 내복을 입고 말을 탔는데도 겨울에는 많은 고생을 했다. 지금도 동상의 흔적이 열 개의 발톱에 그대로 남아 있다. 요즘 신입기수들은 식생활개선과 생활환경의 변화로 인하여 과거보다 보편적으로 신체들이 커졌다. 그래서 과거의 기수들보다 체중에 대한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다. 그런 기수들에게 겨울은 없었으면 하는 계절이고, 꽃피고 새우는 춘삼월이 빨리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게 된다. 기수를 하고자 하는 자식을 둔 부모들 중 겨울에 속내의도 못입고 말을 타야 한다는 것에 기수 시험에 응시를 포기시키는 경우도 있다. 자식을 한두 명 밖에 낳지 않는 요즘, 아무리 기수라는 직업이 좋다고 해도 그런 고생을 시킬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부모들도 있다. 자기 직업에 백퍼센트 만족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늘 다른 직업에 대한 동경이 있다. 그러나 모든 직업은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경마팬들은 이러한 기수들의 고충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늘 돈을 잃고 따느냐에 관심이 있다. 이제 경마팬들도 베팅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이런 기수들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이해하여 주었으면 한다. 몇 년 전 호주의 경마장에서 경마대회를 관전한 적이 있다. 결승선으로 들어오는 말들을 보면서 모든 팬들이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는 모습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이러한 경마문화가 하루빨리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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