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승주의 경마공원 산책
발주기의 문이 열리고 일제히 말들이 결승선을 향해 달려 나간다. 기수와 말은 우승을 위하여 무언의 대화를 시작한다. 고삐를 당겨 말의 힘을 안배하고 앞으로 치고 나가 유리한 자리를 잡고 또는 선행으로 나가려거나 후미로 빠지거나 한다. 이렇게 시시각각 경주의 변화 속에 4코너를 돌아 결승선을 향해 말과 기수가 전력질주를 시작한다. 기수들은 채찍을 가하고 말을 힘껏 몰아낸다. 드디어 어느 마필인가 결승선을 통과하고 우승한 기수는 말의 목을 두드려 주며 우승의 기쁨을 표시하기도 한다. 특히 경마대회에서 우승한 기수는 우승의 기쁨을 더욱 강하게 표현하곤 한다. 채찍을 높이 치켜들기도 하고, 입에 한손을 가져가 우승 키스의 세레머니를 하기도 한다. 많은 관중의 함성속에서 우승한 말은 위풍당당하게 시상대에 나와 우승가운을 걸치고 우승관계자들과 함께 기념촬영도 한다. 어떤 경주에서는 코차의 승부를 펼쳐 사진판독으로 순위를 가리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경주의 당사자인 말도 우승의 환희와 쾌감을 느끼고 있는지에 대하여 경마팬 중에서는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말들은 군집성을 좋아 한다. 혼자 보다는 친구나 동료들과 함께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것을 좋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발주기문이 열리고 어느 한 마리가 뛰쳐나가면 모두가 그 무리를 이루어 달려가려는 습성이 있다. 무리 속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 심리를 인간이 교묘하게 이용하여 경마라는 스포츠를 만든 것이다. 경주중 기수가 낙마를 하게 되는 경우가 가끔 발생하기도 하는데 방마된 말이 레이스의 무리에서 이탈 하지 않고 함께 달리는 것도 군집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함께 달리려는 습성을 가진 말에게 기수가 고삐를 당기거나 늦추고 하여 말의 힘을 안배하거나 기수의 무릎이나 신체일부를 이용하여 말에게 기수가 원하는 신호를 전달하게 되면 말은 피부의 촉각으로 그것이 무엇을 원하는 신호인지를 감지한다. 이러한 기수의 의사표현에 대하여 말들은 기수가 속도를 늦추려는 것인지 아니면 가속을 원하는지 대략 알아챈다. 대다수의 말들은 기수의 요구사항에 순응하며 달리지만 간혹 기수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말들도 있다.

이처럼 기수와 무언의 의사교환을 하며 경주를 전개하는 말들은 자기가 우승한 사실을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무엇일까? 우승을 하고 결승선을 통과한 말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위풍당당하게 행동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 하는 경마팬들도 있다. 그러나 말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우승한 사실을 아는 것과 같이 말이 행동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바라보는 그들의 느낌일 뿐이다. 또 다른 예로 경주 전 말들이 예시장에서 선을 보일 때도 말들은 왜 자기가 그곳에 나와 여러 사람 앞에서 선을 보이는지도 모를뿐더러 경주에서 기수가 채찍질을 하는 것도 더욱 빨리 달리라는 메시지라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그저 신체에 가해지는 채찍에 대한 공포내지는 두려움에 때문에 채찍질의 효과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능력껏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한다고 하여 더 이상의 능력을 끌어내지는 못한다.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경우도 있다. 가끔 기수들은 훈련 중 말이 저지른 행동에 대하여 체벌을 가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말들은 잘못한 행동에 대하여 그 즉시 체벌을 가하지 않으면 자기가 무엇 때문에 혼나는지를 모른다. 그 즉시라는 한계가 말에게는 3초이다. 잘못한 행동에 대하여 3초가 지난 후 체벌을 하게 되면 오히려 악벽(못된 버릇)을 키우는 결과가 되기도 한다. 말은 창의성이 매우 떨어진다. 어떤 행동을 하게 되면 칭찬을 받고 또 어떤 행동을 하게 되면 혼나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기억력은 무척 뛰어나다. 새벽훈련시 주로에서 기수가 낙마를 하게 되면 컴컴한 밤에도 경마공원 내 약 1500칸 정도 되는 마방 중에서 정확하게 자기 마방으로 뛰어서 찾아오곤 한다. 개의 경우는 갔었던 길을 다시 찾아오기 위하여 가는 길에 오줌을 자주 누게 된다. 이는 되돌아 올 때 자기가 누었던 오줌의 냄새를 맡으면서 찾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의 경우는 머리에 입력된 기억력만으로 찾아온다. 경주중 말들이 4코너로 접어들면 경마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함성을 지른다. 이러한 함성소리를 말들도 듣게 되지만 그 함성이 자신들을 향한 응원의 소리라는 알게 된다면 더욱 재미있는 경마가 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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