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승주의 경마공원 산책
경마공원에 오는 수많은 고객들의 일희일비(一喜一悲)에 대한 사연을 책으로 모을 수 있다면 수천 권을 쓰고도 남을 것이다. 그 많은 각양각색의 사연은 어떤 것들일까. 희비의 사연을 결정짓는 것은 짧은 순간에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한 장의 마권이다. 패자의 마권은 쓰레기통이나 바닥에 내던져지고 깊은 한숨을 짓는다. 그리고 승자는 마권을 손에 쥐고 밝은 미소를 짓는다.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패자가 되기도 하고 오늘의 패자가 내일의 승자가 되기도 한다. 경마장의 정문을 들어 설 때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오지만 문을 나설 때는 축 처진 어깨를 한 모습이 되기도 한다. 2011년 신묘년의 첫 경마가 시작되는 날의 경마팬들은 어떠한 생각을 하면서 경마공원에 입장을 하는지 매우 궁금하다. “올해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따고 말거야”하며 굳은 각오로 오는 사람에서부터 “작년처럼 무모하게 많은 액수보다는 소액으로 해야지” “하루에 여러 경주를 하지 않고 몇 개 경주만 골라서 해야지” “토요일까지는 열심히 일하고 일요일에만 와야지” “경마공원에 오는 시간을 줄이고 등산을 하거나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늘려야지” “아예 집을 나올 때 적은 돈만 가지고 와야지” “마권을 구매할 때 여러 마리를 조합해서 사지 말고 두 마리 정도만 조합해서 마권을 사야지” “일을 우선으로 하고 남는 시간에 잠깐만 왔다가 가야지” “본전을 생각해서라도 더 신경을 쓰고 베팅을 해야지” “인기마 위주보다는 배당위주로 소액 베팅을 해야지” “단승식보다는 복승식이나 쌍승식위주로 사야지” 등등 각자의 생각이 모두 다를 것이다. 소위 말해서 “돈놓고 돈먹기, 먹는 사람이 임자야”라는 이야기는 놀음판에서 흔히 하는 소리다. 한국마사회에서도 건전레저를 부르짖고 소액베팅을 권유하고 있지만 일부 사람들 중에는 절제를 냉철한 이성으로도 지배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계속해서 하게 되는 중독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나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한다. 5년 정도 경마를 열심히 했던 사람 중에 돈을 딴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신이다. 이표현은 기수와 조교사를 지낸 필자가 내린 결론이다. 누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기수와 조교사를 거쳤기 때문에 마권을 적중할 수 있는 확률이 크지 않느냐? 나는 이런 대답을 한다. 내가 마권을 사서 돈을 딸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경마공원을 나온 후 십여 년이 넘도록 말똥냄새를 맡으며 제주도의 목장에 쳐박혀 있었겠는가. 모든 겜블의 특성이 이길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을 갖게 만든다. 간혹 누군가 많은 돈을 따는 모습을 보면 그것이 곧 나에게도 있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또한 돈을 잃게 되면 본전 생각에 더욱 더 빠져들게 된다. 이것이 갬블이 가져오는 공통점이다. 포커, 화투, 카지노, 경정, 경마가 모두 갬블이다. 그러나 경마는 마필을 생산하는 1차 산업에서부터 서비스산업인 4차 산업까지 아우르고 있는 것이 다른 갬블산업과 다르다고 차별성을 말하지만 그 내면의 본류라고 할 수 있는 갬블의 속성은 어느 것 하나 다르지 않다. 다만, 적중의 확률이라던가, 갬블을 하는 방식이라던가, 적중을 추리하는 형태라든가, 적중자에게 되돌려 주는 환급금액의 차이들이 다를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경마는 과학적인 통계와 여러 가지 변수가 될 수 있는 것들을 조합하고 추리하여 베팅을 해야 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제 신묘년의 한해도 밝았다. 그리고 첫 경마가 열리는 한주가 다시 시작되었다. 모두가 새해가 되면 새로운 각오로 계획을 설계한다. 경마에 참여하는데도 계획이 필요하다. 이겼을 때 보다는 졌을 때의 생각들을 먼저 떠올려 보고 경마에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마권이 적중하지 못한다는 전제하에 베팅을 해야 한다. 돈을 잃고 패가망신 하게 된다면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가족과 부모, 형제를 생각해보라. 경마는 즐길 때 즐길 가치가 있는 것이다. 도박이 되는 순간 패가망신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를 악물어라, 그리고 절제와 과욕이라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라. 그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확신이 있을 때 경마공원을 찾아라. 그리고 적은 액수를 가지고 와라. 그렇지 않으면 늘 당신의 주머니는 비워 있을 것이다. 오늘 주머니가 채워진다고 해도 그 채워짐은 잠깐뿐이다. 신묘년은 토끼의 해이다. 슬기로운 토끼는 구멍을 세 개 파놓는다는 뜻의 교토삼굴(狡兎三窟)이란 말이 있다. 들어가는 굴과 나가는 굴 그리고 도망갈 굴을 의미하기도 한다. 경마팬들이여! 경마공원에 들락거려도 내 생활만큼은 흔들리지 않는 굴은 반드시 파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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