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승주의 경마공원 산책
많은 경마팬들은 추석과 설을 앞두고 “배당이 많이 터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또한 일부 팬들은 명절 전에는 고배당 위주로 베팅을 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기수시절이었던 1986년 뚝섬경마장 시절만 해도 명절을 앞둔 경마일에 한국마사회의 기수담당자가 기수대기실에 전체 기수들을 모아놓고 경마팬들이 민감해 있는 시기이니 경주에서 열심히 기승을 하고 전능력을 발휘하여 말을 타 달라고 당부를 하곤 했다. 그 당시의 경마팬들 중에는 골수 경마꾼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은 조그만 문제에도 항의를 하고 때로는 기물을 파손하기까지 하였다. 어느 경마꾼은 주로에 뛰어들어 팬티만 입은 채 식칼을 들고 자해를 하며 난동을 부려 경마가 한두 시간씩 지연되기도 하였다.

내가 신인기수 때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내가 기승했던 “남천강”이 우승을 하고 나의 동기생이었던 윤기정 기수가 기승한 말이 2위를 하여 몇천 배의 고액배당이 터졌는데 경마보안과에서 1,2위를 했던 기수를 불러 자체 조사를 하였다. 나는 열심히 기승을 했는데 왜, 조사를 받느냐고 항의를 하니까 소재불명인 어느 경마팬이 한국마사회에 보낸 협박편지가 있었는데 명절 전 경마일에 고액배당을 터트려 달라는 내용이 접수 되었다고 귀뜸을 해 주었다. 지금은 이런 일로 인해 조사를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들이다. 그러나 그 당시는 이런저런 협박편지가 한국마사회에 여러 번 접수되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한국마사회의 임원들이 경마일이 되면 기수들에게 훈시를 하곤 했다. 그때 임원들이 자주 인용했던 이야기가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고, 참외 밭에서 신발 끈을 고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시절만 해도 명절 전에는 배당이 터진다는 설이 전혀 허무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경주의 감시자이며 포청천격인 재결위원들도 명절 전에는 더욱 민감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평상시에는 주의나 견책정도의 제재만 받고 넘어 갈 수 있는 사항이 명절 전에는 기승정지를 받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기수들도 경마팬들과 재결위원에게 흠을 잡히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말을 타다 보면 여러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가끔 배당이 터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모든 것이 자율 속에 책임이 따른다. 경마도 다른 프로 스포츠처럼 자율경쟁 속에서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본인이 책임을 지는 분위기다. 과거처럼 명절 전이라고 하여 한국마사회 임원까지 나와 훈시를 하지 않는다. 내가 현역 시절에는 한국마사회가 경주마를 소유하고 있던 단일 마주제였지만 이제는 각자의 말이 개인으로 되어 있는 개인 마주제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이 글을 기고하면서 평상시와 명절 전에 배당률의 변화를 살펴보았는데 별 차이가 없었다. 과거 명절 전에는 가끔 큰 배당이 터진다는 속설이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 속설에 별 의미가 없다.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는 풍수지탄(風樹之嘆)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기수와 조교사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기수와 조교사가 나무라면 바람은 경마팬인 것이다. 가끔 바람에 나무가 부러지고 뿌리가 뽑히고 아예, 나무 자체가 죽어버리는 일들이 간혹 발생한다.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동에 이롭다는 뜻의 양약고어구(良藥苦於口)의 의미를 기수와 조교사들이 자주 되새겨 보아야 할 단어이다. 요즘 기수들은 조교사의 경주작전을 잘 따르지 않는다고 조교사들의 불만이 많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기수들의 생각대로 말을 타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든 스포츠에서 감독은 절대적이다. 감독의 작전을 무시한 선수들은 살아 남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가끔은 경마에서 조교사의 작전을 무시하고 기수의 임기응변을 발휘하여 말을 타야 할 때가 많이 있다. 기수들이나 조교사들도 이제는 명절이라고 해서 마음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고 평소처럼 기승을 하고 작전을 내린다. 간혹 명절 전에 커다란 배당이 터질 수도 있겠지만 이는 평상시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이제 한주 후에는 명절인 설이 다가온다.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 친척들을 찾아뵙거나 조상께 절을 올려야 한다. 과다 베팅으로 빈털터리가 되어 고향을 찾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명절 전에 한 밑천 챙겨 고향에 가야지 하는 마음이 오히려 화가 될 수 있다. 고배당 위주의 베팅은 그만큼의 위험부담이 따른다. 명절 전이라고 하여 고배당 위주의 베팅은 금물이다. 항상 안정적인 베팅이 바람직하며 무리하지 않는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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