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승주의 경마공원 산책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그러면 경주마는 죽어서 무엇을 남기는가. 가죽도 남기도 이름도 남긴다.

경주마는 경마공원을 은퇴한 후 용도에 따라 가는 곳이 달라진다. 요즘 승마인구가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은퇴하는 경주마들이 가장 많이 가는 곳이 승마장이다. 경주마를 승용마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승용마에 맞는 성격개조가 필요하다. 경주중 골절을 당하는 말들은 갈 곳이 정해져 있다. 소각 아니면 육용이다. 불행하게도 모두 생을 마감해야 한다. 소각은 경마공원에 마련된 말 소각장에서 한줌의 재로 남게 되며 그 재는 사람처럼 자연에 뿌려지지도 않는다. 육용은 도살을 의미한다. 도살 후 동물원 맹수들의 식사 거리로 제공되거나 애완견의 간식인 육포를 만드는데 사용된다. 요즘 말고기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경주마는 지방질이 적고 근육이 많아 육질이 질겨 사람들이 먹지 않는다. 그러나 비육을 잘 시킨 말고기는 육질이 부드럽고 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웰빙음식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암말들은 씨암말이나 승용마로 사용된다. 씨암말의 조건은 서울경마공원의 말은 3등급이상, 부산경남경마공원은 2등급 이상 되어야 한국마사회가 보유하고 있는 씨수말과 교배를 할 수 있다.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암말은 대부분 승용마로 사용되지만 성질이 예민하거나 온순하지 못하면 이 또한 육용으로 처리된다. 그레이드급 경마대회에서 우승한 암말이 씨암말로 전향하면 한국마사회에서 보유하고 있는 씨수말 중 가장 우수한 씨수말과 교배할 수 있는 우선권이 주어진다. 이런 조건을 갖춘 암말은 경주퇴역 후 씨암말로도 높은 몸값을 받을 수 있다. 수말의 경우는 암말보다 사용되는 용도가 극히 제한적이다. 경주성적이 우수했거나 혈통이 좋은 말들 중 극히 일부는 씨수말로 사용된다. 국내 경주에서 퇴역한 후 씨수말로 등록할 수 있는 길이 예전에 비해 넓어졌다. 현재 국내에 있는 전체 씨수말은 약 180여두다. 이중 경마공원에서 은퇴한 후 씨수말로 활동하는 말은 모두 42두다. 이러한 씨수말의 숫자는 앞으로 더욱 늘어 날 것이다. 아직은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도 경주마에서 은퇴한 후 씨수말로 전향하여 많은 교배료로 수익을 얻는 시기가 올 것으로 생각된다. 수말로 태어나 씨수말로 생을 마칠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이다. 씨수말이 되면 몸에 좋은 각종 영양제를 비롯하여 스테미너 음식이 제공되며 마방도 일반 마방에 비해 호화롭다. 그리고 매년 여러 두의 신부(씨암말)들을 맞이하게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어찌 보면 인간도 경험하기 힘든 특혜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일부는 조랑말의 종마로 생활하기도 한다. 제주경마공원에서 뛰고 있는 대다수 한라마들의 아비마는 서울과 부경경마공원에서 은퇴한 수말들이다. 조랑말의 종마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성적이 좋은 것은 기본이고 무엇보다 키가 작아야 픽업이 된다. 그 이유는 2세들도 키가 작아야 하기 때문이다. 제주경마공원의 한라마들은 6개월에 한번씩 키를 재어 138센티미터가 넘으면 아무리 성적이 좋은 말이라고 해도 강제로 은퇴를 하게 된다. 십년 전 제주경마공원에서는 ‘천지’라는 씨수말과 교배를 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천지’는 서울경마공원에서 은퇴한 수말이었다. ‘천지’의 자마들이 제주경마공원을 주름잡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부는 거세를 당하여 승용마로 사용된다. 수말들은 성격이 거칠고 힘도 강할 뿐만 아니라, 암말이 발정이 오면 날뛰기 때문에 낙마의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승용마로 사용하기 위해서 우선 먼저 하는 것이 거세이다. 거세를 하게 되면 성격이 온순해지고 암말에 비해 지구력도 강하기 때문에 많은 승마장에서 거세마를 선호하기도 한다. 거세와 관련하여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지난해 내가 학과장으로 있는 대학의 마사과 학생들을 데리고 정읍에 있는 웨스턴캠프(말 목장)로 MT를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말의 생리 및 질병, 번식학을 담당하는 수의학 교수가 학생들에게 교육의 일환으로 수말 3마리를 거세하는 수술을 보여 주었다. 그 교수는 거세를 하여 떼어낸 고환을 보여주며 정자를 생산하는 과정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다. 정자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이 있어야 한다. 하나는 적정온도이고 또 하나는 일정한 압력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남학생이 큰소리로 대답했다. 손이요. 모두가 까르르 웃었다. 그 자리에는 여학생들도 있었는데 한 여학생은 그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인간이나 말이나 모두 살아가는 삶은 천차만별인 것 같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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