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 현역 최고령···어릴 때 부상 ‘트라우마’ 극복하고 전성기 맞이해
경쟁·복지 현대 인간 사회 축소판인 경마장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와아아~~”
“뭐야, 저 늙다리 똥말이 왜 들어와, 에잇!”
“난 저 녀석 올 줄 알았다니까. 고맙다, 우박아!”

2019년 2월 17일, 부경 제6경주 1,200m 경주가 끝났을 때 내 집이자 일터인 렛츠런파크 부산경남 경마장은 평소보다 더 떠들썩했다. 단승 94.2배, 연승 16.8배로 함께 뛴 친구 중에 가장 높은 배당을 받은 나였다. 1등을 한 ‘정상코리아’와 함께 기록한 복승식이 무려 1361.9배. 사람들은 내가 입상하리라고 전혀 생각지 않았다. 아니, 그냥 ‘너는 꼴찌’라고 낙인찍은 것이다.

난 그들이 흔히 말하는··· ‘똥말’, ‘늙다리’, ‘고인물’로 현역 최고령인 9살 경주마, 이름은 ‘우박이’다.

나는 ‘우박이’다. 아빠 ‘메니피’와 엄마 ‘캐더랙케이퍼’ 사이에서 2010년 2월 26일 제주 평대목장에서 태어났다. 올해로 9살, 현역 경주마 가운데 최고령이다.
나는 ‘우박이’다. 아빠 ‘메니피’와 엄마 ‘캐더랙케이퍼’ 사이에서 2010년 2월 26일 제주 평대목장에서 태어났다. 올해로 9살, 현역 경주마 가운데 최고령이다. 한창 경주를 뛰어야 할 나이에 불의의 사고를 겪고 병원 신세를 졌다. 얼굴 신경이 마비되고 밥도 못 먹었으며 이후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주인 이동훈 마주와 장세한, 임동창 조교사의 사랑이 없었다면 난 지금쯤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말산업저널 안치호

먼저 여러분께 내 소개를 하고 싶다. 나는 2010년 2월 26일, 제주 평대목장에서 아빠 ‘메니피’와 엄마 ‘캐더랙케이퍼’ 사이에서 태어났다. ‘우박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맞다. 영화 ‘챔프’에 등장하는, 전설의 선배 ‘루나’를 모티브로 한 영화 주인공 이름과 똑같다. 내 주인인 이동훈 마주의 딸과 사위가 동물 사랑이 각별한데 그 영화를 보고 와서 이름을 ‘우박이’로 짓자고 ‘강추’했단다.

지금도 이동훈 마주는 나를 볼 때마다 혼잣말로 –그는 내가 인간 말을 못 듣는 줄 안다- 말(馬)도 이름 따라간다며, 영화 주인공처럼 참 힘들고 어려운 마생(馬生)을 잘 극복했다고, 잘 견뎌줘서 정말 고맙다고 종종 말한다.

1세 때 개별 거래를 통해 평대목장에서 부산 17조 장세한 조교사 마방으로 이사 왔다. 이동훈 마주와 장세한 조교사는 엄마, 아빠의 유전자 능력을 내가 잘 이어받았을 거라 철썩같이 믿었다. 내 이부형제, ‘프로키온’이 4천5백만 원에 낙찰돼 2011년까지 뛰면서 1군까지 올라와 4억1,388만 원의 상금을 기록한 걸 보면 나도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털빛은 갈색인 아빠(좌)보다는 엄마(우)에 더 가까운 흑갈색이다. 능력이나 적정 거리는 아빠 전성기 때와 비슷하다고 한다. 눈매는 아빠를 좀 더 빼닮았지만, 사람처럼 전체적으로 엄마 반, 아빠 반 닮았다.
내 외모에 대해 더 말하자면, 몸무게는 500kg 정도 나가는 ‘웰터급.’ 털빛은 갈색인 아빠(좌)보다는 엄마(우)에 더 가까운 흑갈색이다. 능력이나 적정 거리는 아빠 전성기 때와 비슷하다고 한다. 눈매는 아빠를 좀 더 빼닮았지만, 사람처럼 전체적으로 엄마 반, 아빠 반 닮았다(사진= 한국마사회 홈페이지 갈무리).

나도 여느 친구들처럼 혈통 등록 마치고(2011년 4월 30일), 경주마로 등록한 뒤(2012년 5월 12일) 여권도 받으면서(2012년 8월 30일) 경주로를 맘껏 뛸 기대에 한껏 부풀어 열심히 훈련하고 있었다. 마방 식구들의 기대를, 그 희망에 부응하고 싶었다.

기대가, 희망이 너무 컸던 탓일까. 한창 달려야 할 3살이 된 2012년 초여름, 나는 데뷔를 앞두고 운동을 하다가 크게 다쳤다. 워킹머신에 목이 끼였다. 상태는 심각했다. 사람들은 회복 불능이라고, 경주마로 못 쓴다고 사망 선고까지 했다. 나도 이대로 끝이라 생각했다. 명예롭게 은퇴한 다른 친구들처럼 승용마로 제2의 삶을 살거나 고향으로 돌아가 초지를 누비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아픈 몸이니 결국 폐사되거나 개나 고양이 사료로 분화할 날만 기다렸다.

“당시 우박이는 경주마로 못 쓴다고, 사망 선고까지 나온 상태였다. 하지만 능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그대로 보내기에 너무 아까웠다. 이동훈 마주도 우박이에게 애착이 많았다. 기다려달라고 했다. 다른 분들이라면 쉽지 않았을 결정을 내렸다. 관리만 하는 것도 말값 이상 들어가는데 휴양을 보내고 치료를 받게 했다. 나중에는 안면 신경이 마비돼 밥을 못 먹을 정도였고, 혓바닥이 늘어지고 눈도 사시가 됐었다.” -장세한 조교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씨수말, 아빠 '메니피'처럼 나도 한 몸매 한다. ⓒ말산업저널 안치호
경주마 9살은 사람 나이로 치면 환갑에 가까운 나이다. 그래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씨수말, 아빠 '메니피'처럼 나도 여전히 한 몸매 한다. ⓒ말산업저널 안치호

그 사건 이후로도 크고 작은 질병을 달고 살았다. 오른 앞다리를 계속 절었고, 거세를 받고 난 뒤 타박상은 계속됐으며 설상가상 안면 마비까지 왔다. 밥을 못 먹으니 병은 더 깊어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괜찮아졌다. 단순히 자생에 의한 자연 치유가 아니었다. 몸은 아팠을지언정, 마음이 편해서였을까.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이 결국 사랑, 그 위대한 힘으로 내 안에서 현화한 걸까.

나는 차츰 안정을 되찾았다. 결국 꿈에 그리던 경주에 출전했다. 2013년 11월 15일. 첫 경주 성적표는 6등이었다. 함께 뛴 친구들이 7명이었으니 꼴등과 다름없었다. 그래도 거의 일 년을 밥만 축낸 ‘밥돌이’가 밥값을 하게 됐다는 사실에 기뻤다. 다음 경주에서부터 승승장구했다. 무려 4연승을 하면서 국3군까지 단박에 진입했다.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했다. 언론에서도 내 승리를 대서특필할 정도였다.

정신적 트라우마는 쉽게 극복할 수 없었다. 워킹머신과 같은 좁은 공간에 들어서면 공황이 발발했다. 좁은 발주대에서 출발해야 하는 경주마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 생겼다. ⓒ말산업저널 안치호
정신적 트라우마는 쉽게 극복할 수 없었다. 워킹머신과 같은 좁은 공간에 들어서면 공황이 발발했다. 좁은 발주대에서 출발해야 하는 경주마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 생겼다. ⓒ말산업저널 안치호

하지만 정신적 트라우마는 쉽게 극복할 수 없었다. 워킹머신과 같은 좁은 공간에 들어서면 공황이 발발했다. 좁은 발주대에서 출발해야 하는 경주마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 생긴 것이다. 경주를 거듭할수록, 사람들의 기대가 점점 높아질수록 과거 악몽은 더 물밀듯 몰려왔다. 출발대에 서면 몸이 스스로 거부했다. 괜찮던 건강도 다시 안 좋아졌다. 요배통도 왔고, 없던 축농증까지 생겨 숨도 막혔다. 사람들은 이젠 나를 가리켜 ‘악벽마’라고 낙인찍었다.

2013년 8월부터 9월까지 악벽마 클리닉을 통해 환경 적응 훈련을 반복했다. 렛츠런파크 부산경남 출발 전문 위원들의 도움을 받아 눈가리개를 사용하거나 출발대 진입 동선을 변경하는 등 반복 훈련을 하면서 적응력을 키웠다. 국2군으로 올라선 9월 26일 경주에서 비교적 원활하게 출발은 넘어섰지만, 성적은 시원치 않았다. 결국 하위권을 전전하다 다시 국3등급으로 떨어졌다. 경주를 앞둔 당일 왼 앞다리를 절어 출전 취소라는 수치도 겪었다.

한국경마 차세대 기대주에서 결국 평범한, 그저 그런 자리나 채우는 경주마로 전락했다. 국3등급에서 몇 차례 더 입상했고, 2등급으로 올라서 2016년 11월 6살 때는 일본으로 원정까지 가 제4회 한일교류경주대회에 출전하기도 했지만, 사실 내 주력 거리에 기대가 있었던 덕이지 입상을 바라지도 않았다. 원정 부담도 커서 평균 1분 13초대인 본 실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결국 꼴등 했다.

그 이후로 난 지금까지 들쭉날쭉, 2군과 3군을 오가며 어쩌면 계륵으로 전락한,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올해 벌써 9살이 됐고, 가장 나이 많은 ‘원로’ 경주마가 됐다. 세월 참 빠르고 무상하다. 사람들은 이제 나를 잊었다. 쳇바퀴 돌 듯 뛰라면 뛰고, 먹으라면 먹고, 자라면 자는 진짜 늙다리가 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현재 몸 상태에 이상은 없다. 지금은 완전히 회복됐다. 9살이라는 나이에 뛰는 게 쉬운 게 아닌데 지금까지 버텨주는 게 참 대견하다. 그때 일을 계기로 더 강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안 다쳤으면 경마대회도 우승하고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 텐데 참 아쉽다. 이제 나이도 있기에 거창한 계획은 없지만, 기본 성적을 거두고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계속 함께할 것이다.” - 임동창 조교사

원래 나는 선행, 선입형 경주마였다. 밥벌이는 해야 하니까 ‘탕’, 소리 나자마자 최대한 빨리 출발대를 벗어나 무작정 달리고 봤다. 기본 능력이야 원래 있었으니 컨디션 좋은 날에는 2등 친구와 2마신 차까지 벌린 적도 있었다. 지금은 그렇게 빨리 달릴 순 없다. 출발대가 있건 없건 그냥 달린다. 출발대도, 총소리도 이제 내겐 무딘 그 아무것이 됐다. 늙으면 아이가 된다고, 지금도 경주를 뛰다 앞이나 옆에 다른 친구들이 붙을라치면 겁부터 더럭 나기는 한다. 그들이 혹 나처럼 다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나는 경주 스타일을 추입으로 바꿨다. 은퇴를 앞둔 늙다리니 후배들이 뛰는 모습 뒤에서 슬슬 보면서 자리나 지키겠다는 심보는 아니다. 물론 아직도 트라우마는 남아 있고 경주 도중 후배들이 다칠까 걱정돼 미리 피하기도 하지만, 나는 뛸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그 이유는 내가 받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아픈 날 버리지 않고 끝까지 지켜준 사랑, 그 사랑에 보은하고 싶기 때문이다. 인간 언어로 표현 못 할 뿐이지 매 경주마다 최선을 다하며 이동훈 마주와 가족들, 장세한, 임동창 조교사, 관리사 그리고 날 응원해준 팬들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있다.

김혜선 기수와 오랜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김혜선 기수는 내 마음을 읽고 재촉하지 않고 천천히, 차근차근 날 결승선까지 데리고 갔고, 우리의 교감이 ‘반전 드라마’를 썼다(사진=한국마사회 자료 및 김혜선 페이스북 갈무리).
김혜선 기수와 오랜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김혜선 기수는 내 마음을 읽고 재촉하지 않고 천천히, 차근차근 날 결승선까지 데리고 갔고, 우리의 교감이 ‘반전 드라마’를 썼다(사진=한국마사회 자료 및 김혜선 페이스북 갈무리).

작년 10월 26일, 김혜선 기수와 오랜만에 우승한 그날도 내 배당은 거의 꼴찌였다. 경마를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회춘했네, 마방 승부가 있었네, 짜고 치네 하지만, 난 알았다. 김혜선 기수가 내 마음을 먼저 읽고 출발이 늦었어도 재촉하지 않고 천천히, 차근차근 날 결승선까지 데리고 갔다는 사실을. 우리 교감이 만들어 낸 ‘반전 드라마’라는 사실을. 경주 끝나고 입가 가득히 미소 지으며 나를 쓰다듬어준 김혜선 기수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또한 그날 우리 모습을 “예술”, “인마호흡의 현재”, “가슴 뭉클하고 콧등 시큰했던 장면”이라며 오랜만에 울었다고 후기를 남긴 경마 팬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지금까지 내가 벌어들인 상금은 3억3073만 원 정도다. 몸값의 5.5배 정도로 벌었지만 나 혼자 한 일이 결코 아니다. 사실 난 1등도 중요치 않고 상금에도 관심 없다. 그저 현역으로 뛸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받은 사랑에 보은하기 위해 열심히 뛸 뿐이다. 내 주인 이동훈 마주의 회사 이름처럼 ‘성실’, 그것이 내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경주마 원로로서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내 주인처럼 우리 말(馬) 친구들을 경쟁으로 내몰아 돈벌이 수단으로 삼지 말고 동반자로, 생물로 더 많이 아껴주기를 바란다. 흔히들 경마는 혈통 스포츠라고 한다. 맞는 말이지만, 절대 원칙은 아니다. 인간 세계에서 더는 개천에서 용 나지 않는다지만, 우리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우리를 향한 관심과 사랑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제발 ‘똥말’이라고 부르지 않기를, 우리도 버젓이 이름 있는 생명임을 인정해 주기를. 그럴 때 우리는 존재 이유를 찾고 아픔도 극복하고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뛸 수 있다.

경마장에서의 삶은 행복하지만, 은퇴 후에는 영화 ‘챔프’ 주인공 우박이처럼 고향 제주로 내려가 해변도 달리고 초지를 누비고 싶다. ⓒ말산업저널 안치호
경마장에서의 삶은 행복하지만, 은퇴 후에는 영화 ‘챔프’ 주인공 우박이처럼 고향 제주로 내려가 해변도 달리고 초지를 누비고 싶다. ⓒ말산업저널 안치호

“우박이 성격은 아주 차분합니다. 뛸 때는 참 잘 뛰죠. 1, 2등 들어올 때 보면 승부 근성이 아주 뛰어납니다. 그 어려운 일, 아픔을 겪고도 잘 극복했습니다. 최근 다시 성적이 좋아지고 있는데 내게 보답하려는 건지 그 마음이 참 기특하고 고맙습니다. 은퇴요? 10살 넘도록 현역에서 뛸 수 있도록 하렵니다.” - 이동훈 마주

이동훈 마주는 나를 통해 ‘희망’을 봤다고 했다. 그래서 작년에 ‘희망소녀’와 ‘희망여전사’라는 두 후배를 새로 들였다. 나도 후배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

마지막 바람이 있다면, 건강하게 은퇴해서 고향인 제주도로 가는 것뿐이다. 내가 태어난 목장에도 가보고 해변도 달리고 여행 온 사람들과 만나고도 싶다. 9살 평생을 마방에서만 지내다 보니 경주 때 빼고는 본래 질주 습성을 종종 까먹는다. 내가 누구인지 잊을 때도 요즘 들어 잦아졌다.

똥말이 아닌 황혼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나 ‘우박이’로, 사랑을 베풀어준 주인에게 충성한 보은과 성실과 희망의 아이콘으로, 유종의 미를 위해 최선을 다한 경주마로 사람들이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 본 기사는 부산경남마주협회 소식지, '오너스투데이' 9호(2019년 봄호)에도 실렸습니다.

취재= 이용준·안치호 기자
작성= 이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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