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안장 채우는 주인에게 순종하는 모습입니다. 왼쪽에 고개만 내민 녀석이 바로 윈디입니다. (ⓒ레이싱미디어 이용준)
- ‘퇴역마’ 윈디와 추위에 벌벌 떠는 말을 보며 새롭게 다진 각오
- 말(言)로 ‘힐링’하고 말(馬) 달리겠습니다


지난해 말, 말 한 마리가 방송을 탔습니다. ‘윈디’는 사람을 태우면 뒤로 후진하는 이상한 ‘악벽’을 고치지 못하고 경마장에서 퇴출당한 퇴역마였습니다. 대통령배나 그랑프리 대회에서 우승은커녕 경기 출전조차 못한 채 꿈을 포기당한 윈디는 이름 모를 한 승마장으로 팔려갔습니다.

그곳에서 한 주인을 만났습니다. 그도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퇴직자’였습니다. 이태준 씨는 윈디를 지극정성 돌보며 국토 종주에 나섰습니다. 김포골드승마클럽(이병택 원장)에서 출발, 한 달 가량 전국을 휘젓고 부산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말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 철폐’ 때문에 시작한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더욱 감동적인 건, 전국 각지의 승마장과 승마인들이 물심양면 이들을 도왔다는 사실입니다.

어제 윈디와 이태준 씨를 만나러 김포골드승마클럽에 갔습니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각오가 필요했는데 이들을 만나면 ‘국토 종주’의 힘을 거저 얻을 것만 같았습니다. 한파가 몰아친 영하 14도의 날씨, 특히 겨울철 승마장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춥습니다. 기승 준비를 하는 말 한 마리가 벌벌 떠는 모습을 봤습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어쩌지 못하고, 덜덜거리는 이빨은 펜스를 물면서도 주인을 태우려고 참고 인내하는 모습이 느껴졌습니다.

그 옆에선 윈디가 ‘겨울 옷’을 입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습니다. 옆에 있는 친구에게 마치 말을 거는 것 같기도 합니다. 호기심이 많은 녀석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윽한 눈빛, 사람의 입 모양과 똑 닮은 모습을 보면서 매력적인 녀석이구나, 하고도 생각했습니다. 승마장 교관님께서는 국토 종주를 마친 뒤 윈디가 살이 부쩍 올랐고, 방송을 본 뒤 윈디를 보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며 자랑합니다. 또 반가운 소식은 이태준 씨가 바로 어제부터 다시 취직해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윈디를 보러 왔는데 막상 그 벌벌 떠는 말 친구를 보며 새롭게 각오를 다지게 됐습니다.

한 해가 저물고 다시 한 해가 찾아왔지만,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못했고 기대했던 위정자는 이미지 놀음에 패해 꼬리를 감추고야 말았습니다. 현장을 뛰어다녀도 바쁘다는 핑계로 아직 말 한 번 제대로 타지 못했기에 ‘내가 진정한 승마·말산업 기자 맞는가’ 하는 자괴감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말(言·馬)을 사랑해야 하는 경지까지 필요한데 여전히 말을 두려워합니다.

저부터 ‘힐링’이 필요합니다. 승마 운동기 취재 차 영등포에서 만난 O업체의 장인영 주임님이 소개해 준 ‘힐링톡’을 매일 들여다보지만, 마음잡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나듯, 찾아뵈었던 취재원 분들을 다시 만나고 있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최근 경영 상황은 나아지셨는지 여쭤도 보고 기사가 실린 신문도 전해 드리며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다시 만나 반갑다며 환대해 주시는 분들도 계신 반면, 너무 오랜만이라 기억을 못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승용마 전환 사업 취재 차 지산홀스랜드 승마장에서 잠시 뵈었던 이혜란 심판위원은 ‘승마인의 밤’ 행사에서 다시 우연히 만났는데 좋은 기사거리가 있을 거라며 연락을 주시겠다고도 합니다. 마구간승마클럽 고성규 대표님과는 마문화 기획 기사를 준비하면서 다시 찾아뵙겠다고 했는데, 막걸리 한 잔 준비해 놓으시겠다고 했는데, 일정이 계속 미뤄져서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기까지 합니다.

구마지심(狗馬之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이 그 주인에게 충성하는 마음을 다한다는 뜻으로 자신의 진심을 겸손하게 낮추어 표현하는 말입니다.

몸으로 뛰고 발로 쓰는 말 전문 기자로서 저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분명 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분은 바로 취재원분들일 것입니다. 아직 햇병아리기에 전국 방방 곳곳의 승마장과 승마인들, 말산업 관계자분들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달리겠습니다. 기사로도 승부하겠지만 제 이름 높이는 게 아니라 제 주인들의 필요를 알리고 소통하는 구심점을 갖춘 기자 말입니다.

그러려면 할 일이 태산 같습니다. 우선 말을 알고 사랑하기 위해 휴일에는 짬을 내어 승마부터 시작하자는 게 올해 목표입니다. ‘고유 명사’를 외우는 데 젬병이기에 기억할 이름, 행사, 명칭이 많아져 머리가 터질 것 같지만 최선을 다해 기억하자는 게 두 번째 목표입니다. 세 번째는 ‘구마지심’의 마음으로 더욱 부지런히, 진심을 다해 취재원분들을 찾아가고 만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기사거리 많이 안겨 주시고 도와주십시오.

신년을 맞아 현장에 계신 분들과 더욱 잘 소통하고 교류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이용준 기자 cromlee21@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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