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청산 안하면 공동체 침몰···반전 계기 삼아야

결국,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작년 만우절 칼럼에서(다시 보기), 2020년 5월 마사회 조직 적폐 문제가 터지면서 사회적으로 대형 이슈가 되고, 마사회는 말산업진흥공단으로 개편한다고 ‘예상’했는데 역시나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적폐가 근본 원인이기는 하지만 불똥이 엉뚱한 데로 튀었다고 할까. 적폐를 그대로 둬서 모두가 침몰하는 사태라고 할까. 억울하겠지만 먼저 부끄러워해야 한다. 우리 공동체 현실이자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현장에 없다고 가슴이 뛰지 않을까. 필드 안 뛴다고 정보가 없을까. 특히 이 바닥은 좁아서 반복하는 주기도 짧고, 숨기려 들면 들수록 속은 뻔히 보이니 침묵한다는 게, 속이고 손발 자른다는 게 가당키나 할까.

故 문중원 기수 사건이 2019년 11월 29일 새벽에 있었으니 오늘이 49재다. 유서를 처음 접했을 때 직감했다. 보통 일이 아니라고. 이전 사건들과 차원이 다를 거라고. 여론이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가래로도 못 막을 거라고. 근본 원인은 적폐지만, 더딘 혁신과 탕평을 선택한 오류가 기름을 부은 꼴이라고.

감정을 이입하자면, 먼저 부끄럽다. 현명관 전 회장 재임 당시 용산 문화공감센터 개장을 밀어붙이고, 반대하던 시민단체와 적대시할 때 필자는 마사회든 어디든 엉뚱한 기조와 달리, 잘릴 거 각오하고 혼자 취재하고 인터뷰(바로 가기)하고 기사를 냈다. 국가가 주도하는 사행산업이 비정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공동체적 관점에서 ‘반대’가 옳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조건 따지고 눈치 보고 좋아해주는 사람 편에나 서며 엉뚱한 오타나 내는, 스스로 속이는 짓은 자신이 믿는 신(념) 또는 하나뿐인 가족을 욕되게 하는 일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한없이 부끄럽다. ‘걸음마’란 핑계로 용산 문화공감센터 이전 당시나 승마클럽 경영난 문제, 한라마 경주 퇴출 문제를 지적했음에도 -당시엔 힘이 없어- 끝끝내 정책을 바꾸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제는 영향력이 커졌는데 엉뚱한 게 발목을 잡는 걸 알면서도 당장 내칠 수 없다는 사실이. 적폐가 다시 활개 칠 준비를 마쳤는데 지켜보고만 있고, 책상에 앉아 두루뭉술하게 한탄이나 하고 있다는 현재가.

부끄럽고 싶지 않다. 故 문중원 기수는 분명 사실을 말했다. 문제는 살아 있는 우리다. 엊그제부터 시작한 마사회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의 협의가 진정성 있는 결과를 도출하기를 바란다. 팬들도 엉뚱한 소리 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의 ‘선진’ 경마는 적폐의 산물이지 이를 수습하고 중장기 계획 등 새판을 짜려는 현재 관계자들의 잘못이 아니다. ‘현재’의 문제라면 공동체를 지키려고 탕평이라는 관용을 베풀어 자신들을 공격했던 적폐를 용서한 잘못뿐이다. 왜 자신들의 진정을 이해 못하냐고 억울해하며 한 발 빠진 모양새는 볼썽사납지만.

▲지난해 딱 이맘때다. 취임 1주년을 기념한 기자 간담회에서 김낙순 회장은 한국마사회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적폐청산위원회 활동을 했고 반성과 청산 과정을 밟았다고 했다. 국정농단 연루, 대규모 투자 실패, 비인격적 행위, 저성과자 청산 등이 대상이었고 조직의 중복된 기능을 조정하니 효율성이 높아졌다고 했다. 2019년에는 경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쇄신하는 데 온 힘을 다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탕평을 선택했고, 적폐 청산은 미흡했다. 아마도 인정(人情) 때문이리라. 마음이 약해 기회를 다시 주고자 했던 것이리라. 그 결과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가 발발했다. 마지막 선택의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지난해 딱 이맘때다. 취임 1주년을 기념한 기자 간담회에서 김낙순 회장은 한국마사회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적폐청산위원회 활동을 했고 반성과 청산 과정을 밟았다고 했다. 국정농단 연루, 대규모 투자 실패, 비인격적 행위, 저성과자 청산 등이 대상이었고 조직의 중복된 기능을 조정하니 효율성이 높아졌다고 했다. 2019년에는 경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쇄신하는 데 온 힘을 다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탕평을 선택했고, 적폐 청산은 미흡했다. 아마도 인정(人情) 때문이리라. 마음이 약해 기회를 다시 주고자 했던 것이리라. 그 결과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가 발발했다. 마지막 선택의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이번 일을 반면교사 삼기를 바란다. 개인의 일탈조차 조직 전체의 책임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관행과 잘못된 문화를 타파하기 위해 ‘탕평’을 선택했지만, 외부에서 보기에 그조차 ‘짬짜미’며 ‘한통속’으로 비칠 뿐이라는 것, 적폐를 제때 청산하지 못하면 공동체가 무너진다는 진리를 마음에 각인했으면 한다. 탕평은 모두를 침몰케 하는, 또 하나의 자기 위안일 뿐인 최후 유혹이다.

적폐에게 중요한 건 용서받았다는 사실도, 회사나 소속 공동체도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작금의 문제를 키웠던, 암조직 같은 적폐들은 여전히 기생하고 다시 자리를 차지하면서 현 상황을 모른 체하며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먹고살려고”,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변명은 구차하다. 자기 자아만 끝까지 고집하는 소시오패스들과는 과감히 ‘손절’해야 모두가 산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란다.

동물 학대라며 노숙자에게서 반려견을 강제로 뺏은 자칭 동물 권리 운동가들에게 성숙한 여론은 성났다. 지적 장애가 있어 양육할 수 없다며 아버지에게서 딸을 빼앗으려는 선진 인권 운동가들의 행태에 우리는 울고 웃은 기억이 있다. 명분은 그럴싸해도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이해 없는 이들이 어디 한둘인가.

어찌 됐든 현재 약자는 우리다. 경마, 승마, 말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적폐를 그대로 둔 결과가 얼마나 참담한지 새삼 느꼈으리라. 철학 하는 또는 사색하는 이의 최고 덕목은 용기 있는 결단과 빠른 실천이다. 의미 있는 훌륭한 가치, 지향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경마와 승마를 향한 국민 시선과 인식 배경은 사실, 내부에서 비롯한 ‘인재(人災)’이자 더 나아가 인사·조직 시스템의 한계다. 억울하고 부끄럽더라도 인정해야 한다. 밀리지 않되 최선을 다하고, 해결점을 찾되 과오를 답습하지 않기를. 매너리즘에 빠져 너도 옳고 너도 옳다는 톨레랑스는 사실 무책임한 처사라는 걸 분명히 깨닫기를. 그리고 좀 더 공적인 장소, 시민들이 깨어 있는 ‘아고라’로 나가서 귀 기울이기를.

적폐들 용어를 빌리자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그리고 당신에게는 다른 선택을 할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 다시 예상하자면, 다행인 점은 이번 사태는 적폐의 마지막 몸부림이자 적폐 청산의 분명한 근거라는, 분명한 신호라는 거다. 결단 없이는 ‘도르마무’다. 공언한 대로 수사 결과에 따라 진상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미적댔던 근본 문제도 다시 깊이 살펴보고 최선의 결과를 내주길 바란다. 이번 사건을 통해 전향적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면 우리를 향한 세간의 인식은 분명 달라질 거라 믿는다. 아마도 이 일이 지금 ‘현재’의 숙명적 과업이리라.

말산업저널 이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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