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의 한탄>

 

어느날 문득

국토가 두동강 나던 그 시절

골육상잔의 피비린내가 산하를 물들이던 시간

인민군과 국방군이 혹은 빨치산과 토벌대가

대립하던 역사

인민군이 점령했을 때도

국방군이 수복했을 때도

빨치산이 해방을 외칠 때도

토벌군이 빨갱이를 잡을 때도

이 골짜기에는 사람이 살았다

이 편을 요구할 때는 이 편이 되고

저 편을 요구할 때는 저 편이 되어

풀잎으로 살았다

서슬퍼런 이념의 벼린 칼날에 베이고

편견에 갇힌 우직한 군홧발에 짓밟히며

잘리고 문들어져도 생명줄 놓지 않았다

정성을 다하여 꽃을 피우고

꽃이 피니 나비가 나는

아름다운 자연은 변함이 없건만

자본의 마수에 걸린 사람의 욕심은 더욱 거세져

편견은 좀처럼 무뎌지지 않고

평화 번영 통일은 왜 자꾸 아득해지는 것이냐

허물어져야 할 것들은 왜 허물어지지 않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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