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저마다 천성(天性)이라는 것이 있어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는 성품이 있다. 이것은 말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소위 칼칼한 성격의 말이 있는 반면, 온순한 성격의 말이 있다. 그리고 경주마에게 있어 천성이라고 한다면, 무엇보다 뛰어난 승부근성을 타고 났는가에 관심이 모아진다.

승부근성이란, 상대성의 게임인 경마에 있어 너무나 중요한 요소다. 엇비슷한 전력의 경주마의 경우 승부근성에서 앞서는 말이라면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겉으로만 보아서 말의 승부근성을 파악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다. 특히 승부근성은 서로간의 경쟁 속에서 발휘되는 천성이기 때문에 말이 혼자서 따로 떨어져 있다면, 좀처럼 근성을 보이지 않게 된다.

물론 경주마 목장을 방문해보면, 조금은 승부근성을 알아챌 수 있기도 하다. 대개 말들은 무리로 생활하기 때문에 말이 몰려다니는 모습을 살펴보면, 리더격의 말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리더역할을 하는 말은 분명 담력이 있고, 통솔력이 있어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는 승부근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렇게 말무리 안에서 리더역할을 하는 말일지라도 의외로 사람에게는 온순함을 보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오히려 리더쉽이 강한 즉, 승부근성이 강한 말일수록 천성이 좋아 인간에게 더욱 순응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예시장을 관찰해보면, 말의 움직임을 통해 어느 정도 그 말의 근성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예시를 하는 과정에서 대개의 말들은 관리원의 지시에 따라 이동하고 멈추기를 반복한다. 다만, 똑같이 지시에 따라 멈춰 서거나 걷거나 하는 중에도 위화감 없이 마필 유도원과 충분한 교감을 느끼게 해주는 말이 있다. 또 그러한 말들은 움직임 자체도 유연하고 아름답게 보여진다. 물론, 그것이 좋은 체형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정신적인 영향도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아름답게 움직이고 순응하는 말은 성격 또한 솔직하고 영리하며, 분명 다른 말에서 느낄 수 없는 기품이나 박력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백은 육체적인 충실도 뿐 아니라 뛰어난 정신력의 발현이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 천성이 좋은 말이 있는 반면 좀처럼 마필유도원의 지시에 순응하지 않고 고삐를 풀어 버리려고 날뛰거나 하는 말들이 있다. 이러한 경우는 천성 면에서 낙제점이다. 이런 말을 보고 “활기가 좋다느니, 뛰려는 투지가 강하다느니” 하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특히 겁이 많은 말들이 위와 같은 현상을 보이기도 하는데 담력이 부족한 말은 분명 승부근성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되겠다.

또, 순응하는 듯 보이지만 왠지 모르게 끌려다니는 인상을 준다든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버린다든가 할 때 마필유도원이 힘들어하는 말도 있다. 그런 말을 자세히 보면 어딘가 둔하다는 인상을 받게되어 이 역시 천성이 좋지 않거나 영리하지 못한 말들의 태도로 해석될 수 있겠다.

경매장에서의 풍경을 보자면, 예시장과는 조금 다르다. 경매장에 나오는 어린 말들은 좀처럼 사람의 지시에 순응하지 않고 날뛰기 마련인 것. 그도 그럴 것이 들판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던 어린 말들이 경매장이라는 낯선 환경에 노출될 경우 심리적으로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사람의 지시에 비교적 순응하고 온순한 모습을 보이는 말이 있기 마련으로, 역시 이런 말들은 앞으로 대단한 승부근성의 소유자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 말을 구입할 때 천성이 좋은 말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경주마는 경마장에 들어서는 순간 은퇴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훈련을 받아야하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런 훈련을 충분히 견뎌내어 훌륭한 경주마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인간에 철저히 순응해야만 하기 때문에 천성이 좋은 말이 필요한 것이다.

만약 천성이 나쁜 말이라면 그 훈련과정에서 성장이 순탄치 않을 것은 물론이고, 실전에서도 기수의 지시에 잘 따르지 않게 되어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 어렵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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