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최현우 (마주·서울마주협회 회원)

최현우 마주
이게 뭐지? 살다 보면 남의 차를 얻어 타는 기회가 가끔 생긴다. 차에는 반드시 눈에 띄는 무언가가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앞 유리에 붙은 깜찍한 인형에서부터 딸이 만들어준 안전문구까지. 내 차를 타는 사람들은 오디오 위에 시계를 가리고 있는 포스트잇에 관심을 보인다. 지금까지 20여년간 차를 몰면서 일어난 사고의 기록과 비용이 꼼꼼히 적혀 있다. 제발 차근차근 운전하자는 각오를 다지기 위해 취한 불가피한 조치이다.
내가 인간보다는 파충류에 가까운 뇌를 가졌기 때문이다. 바로 넥스팅(nexting)이다.
미인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처음 참가한다고 생각해보자. 출전자 별로 0점에서 10점까지 점수를 매겨야 한다.
모두가 3점을 준 사람에게 자신만 10점을 준다면 본인이 아무리 소신을 가지고 매긴 점수라 하더라도 전문성을 의심받지 않을 수 없다.
전문가의 자존심으로 볼 때 이런 상황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모두가 5점을 주었는데 자신만 1점을 주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자신의 점수가 다른 심사위원의 평균 점수보다 0.5점 정도 낮은 것이다.
전문성과 엄격한 심사기준을 가진 전문가로 인정받는다. 문제는 객관적인 기준을 찾을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남들이 주는 점수보다 0.5점쯤 덜 주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에 심사위원은 점수를 매길 때 마다 남들이 몇 점을 줄 것인지 예상을 해야 한다.
다른 심사위원이 5점을 준다고 생각되면 자신은 4.5점을 주면 된다. 이것이 넥스팅이다. 불을 보면 ‘뜨겁다 피하자’이다. 파충류와 동물이 가진 뇌의 능력이다. 인간의 전두엽은 합리적인 생각과 논리적 사고, 계획이 가능하다.
인간의 뇌라면 다음 단계를 예상하고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 다른 심사위원들도 바보가 아니다.
자신과 꼭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4.5점을 줄 것이다. 그러면 나는? 4.0점을 주어야 한다. 그런데 남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3.5점을 주어야 한다. 이런 과정이 계속되면 어떻게 될까? 그 유명한 거시경제학의 창시자 케인즈의 미인대회이론이다. 정작 케인즈가 관심을 가진 것은 최종의 값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과연 ‘몇 단계까지 생각하는가’ 였다. 결과는? 3단계까지 생각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고 대부분 1단계에서 멈춘다는 것이다.
복잡한 기계를 다룰 때, 복잡한 사회현상의 해법을 찾을 때 이러한 넥스팅은 심각한 사고를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골목길에서 대로로 차를 몰고 나올 때만 해도 ‘신호가 떨어졌다 가자!’는 넥스팅이다.
이러면 뒤늦게 오는 차와 부딪히거나 길을 건너는 사람을 치일 수도 있다. 뒤늦게 오는 차를 확인한다, 좌우를 살펴서 행인을 확인한다, 핸들을 꺾는다, 엑셀을 밟는다는 식으로 단계대로 생각하면서 행동해야 한다. 이 부분이 나는 훈련이 안 되는 것이다.
집단이 의사결정을 하거나 정부가 정책을 수립할 때는 어떨까? 최고의 두뇌집단이 하는 일이기에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고의 단계를 거쳐 이루어져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거의 넥스팅에 의해 이루어진다. 넥스팅은 본능과 부합하기 때문에 이해가 쉽다. 직관적으로 이해가 된다. 그리고 모든 이에게 설득하기 쉽다.
보통의 사람은 문제에 대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전문가의 이야기보다 직관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이야기에 동의한다. 부동산 대책이 대표적이다.
가격이 오르면 사기 어렵게 만들거나 사서 손해 보게 만들면 된다. 전형적인 넥스팅이다.
매입할 때 세금을 물린다, 보유세금을 올린다, 양도할 때 세금을 올린다, 투기자를 조사해서 감방에 넣는다, 모두가 살 수 있도록 공급을 늘린다 는 대책이 쏟아진다. 이렇게 했을 때 결과는? 그 결과가 오늘날의 전세시장, 부동산 시장이다.
사행산업에 있어서 풍선효과가 맞는가, 기관차효과가 맞는가를 두고 이해당사자간에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풍선효과란 김 강자 전경찰서장이 미아리 사창가 단속에서 얻은 교훈으로 집창촌 단속을 강화한 결과 매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평택으로, 파주, 주택가로 음성적인 곳으로 번져가더라는 것이다.
그나마 집창촌에서 매춘이 이루어질 때는 관리가 가능했는데 주택가로 음성적인 곳으로 숨어드니 통계도 관리도 불가능해지더라는 것이다.
이런 뼈저린 교훈을 바탕으로 김 전서장은 미아리 집창촌 단속을 미성년자 매매춘 단속으로 변경했다.
기관차 효과란 합법사업이 번창하면 이것이 매개가 되어 불법사업의 규모가 커진다는 논리이다.
두 논리 가운데 어느 것이 맞는지, 연구를 통해 속 시원히 알았으면 좋겠지만 이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행복 비교연구’와 같기 때문에 연구 자체가 불가능하다.
죽은 자가 말이 없듯, 불법산업은 자료도 통계도, 실체도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의 추계로는 불법사행산업 규모가 88조원에 달한다고 하나 이 또한 근거를 찾기 어려운 어림짐작일 뿐이다.
직관적으로 생각해도 기관차효과는 허구이다. 조선시대에 합법적인 투전판이 있었던가? 우리나라에 합법적인 월드컵 승리팀 맞히기 내기가 있었던가? 합법적인 주사위 내기가 없었을 때도 우리는 초등학교에서 주사위 내기를 했다.
합법적인 고스톱 판이 없었음에도 명절 때마다 고스톱을 쳤고 대학시절 MT를 가면 포카를 쳤다.
자신의 예상과 기대가 남들과 팽팽하게 맞설 때 ‘그래 누가 맞나 내기해보자!’는 욕구는 인류의 자연스럽고 기본적인 욕구이다.
조선시대 태조로부터 순종까지 무려 67회의 금주령이 내려지고 재확인되었다. 그 때마다 실패했고 더 큰 부작용이 발생했다.
미국에서도 1920년대 금주령이 있었지만 불법밀주제조, 조직폭력단체간 살인과 폭력을 불러오는 등 극심한 부작용이 생겨 폐지했다. 지금은 알코올 중독치료, 예방으로 해결방법을 찾고 있다. 도박도 금지한 사례가 많다. 시비스킷을 보면 대공황으로 도박을 금지한다.
하지만 멕시코 국경에서는 도박판이 열렸고 사람들은 그곳으로 몰렸다. 공식도박이 금지되자 사설도박이 더 커졌다.
인류사회에 백마를 탄 초인이 나타나 도박과 술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할지 모르겠지만 역사시대 5,000년의 중간평가 결과는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사행산업감독위원회는 경마·경륜·카지노 등의 매출 총량 제한, 구매상한선 설정, 이중삼중의 징벌세 부과, 경마중계의 금지, 인터넷을 통한 투표금지 등 합법적 내기가 힘들도록 하고 있다.
그 결과가 88조에 달하는 불법사행산업의 팽창이다. 지금의 사행산업감독위원회는 마치 큰아들 붙들고 인터넷 게임 연간 총시간 상한을 정하고 학습계획을 세우는 부모와 같다.
둘째와 셋째는 형이 인터넷 게임하다 아버지에게 매질 당하는 것을 보고 집을 나간 지 오래다.
집에 있는 컴퓨터보다 더 좋고 속도 빠른 PC방에서 게임에 몰두해 있다.
아버지는 큰아들이 인터넷 게임을 줄이고 공부를 잘해야 둘째, 셋째가 가정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넷째 아들이 가출할 맘을 먹고 있다는 것은 까맣게 모른 채.
둘째, 셋째가 집에 있어야 게임시간을 관리하든, 학습계획을 세우든 할 것이다. 이들이 집으로 돌아오도록 하려면 큰아들을 숨막히게 감시하고 게임을 못하도록 할게 아니라 집에 있는 PC를 최신형으로 바꾸고 인터넷 속도를 높이고, 원하는 만큼 게임을 하되, 학교성적은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할 것을 약속하도록 하는 게 옳다.
사행산업감독위원회의 뇌가 나의 파충류의 뇌와 닮아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작 성 자 : 이용준 cromlee21@krj.co.kr
저작권자 © 말산업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