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창(소설가, 시인)
소설가이자 시인 우영창 씨는 과거 증권회사 지점장을 거친 바 있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금융이 장악한 현대사회의 단면을 잘 표현한 대표작 `하늘다리`에는 런 그의 경험과 문학관이 잘 묻어있다.
본지를 통해 소개되는 수필 `당나귀 신사` 역시 돈에 관한 이야기다. 돈과 경마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 깊은 곳을 들여다 보게 될 `당나귀 신사`는 가벼운 듯 하지만 결코 가볍지만 않은 우리들의 진솔한 이야기다. (편집자주)

우영창
- 경북 포항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 동서증권 지점장 및 대우증권 영업부장 2003년 퇴사
- 1985년 동인지 으로 등단
- 대표작 제1회 계간 5천만원 고료 장편소설 당선작 `하늘다리`
시집



진정한 당나귀 신사인 거상 시(市) 금도끼 아파트의 백팔만 씨가 나섰다

당나귀 신사 백팔만 씨는 아침 열 시 경에 집을 나섰다. “당나귀 신사님 좋은 아침입니다.” 경기도 거상 시(市)의 금도끼 아파트 검문소에서 교감 수위가 인사를 건네 왔다. 아파트에 차량 차단기가 생기면서 신사의 당나귀도 잠시 멈춰 서야 했다. 키가 작고 반백머리에 모자를 삐뚜름하게 쓰는 버릇이 있는 60대의 교감 수위는, 중학교 교감의 엄숙했던 과거를 잊고 아파트 정식 수위로서 제 2의 힘찬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백팔만 씨가 언제부터 당나귀를 탔는지는 의견이 분분했는데 교감 수위는, 이 땅에 당나귀가 가지 않는 곳은 없다고 들었다. 토, 일요일은 밤늦어 과천 경마장에서 돌아오는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잃으나 따나 술에 취해 있어 표정만으론 그날의 승패를 알 수 없었다. 홍삼 한 뿌리 같은 고가의 드링크가 박스째 풀리는 날이 있는가 하면 당나귀 뒤꿈치가 음식물 수거통을 걷어차는 일도 있었다. 대개는 너무 취해 그냥 집으로 들어갔다.
교감 수위는 오늘 신사 당나귀가 힘차게 시내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이 솔솔 부는 쾌청한 아침이었다. 당나귀가 시민공원에 도착하기까지 몇 가지 사소한 일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이상한 느낌에 옆을 돌아본 아주머니가 기겁하여 뒤로 물러선다거나 철없는 어린아이가 뒤를 졸졸 쫓아오다 누가 부르는 소리에 멈춰선다든가 하는, 늘 있는 일이었다. 한 가지, 길 한복판을 가로막고 모여서서 떠들고 있던 다단계 처녀들의 엉덩이에 코를 붙인 당나귀가 킁킁대는 바람에 까아악 소리와 함께 처녀들이 물 튀듯 흩어진 것이다. 처녀들은 이 엉큼한 짐승을 성추행으로 걸기 위해 휴대폰 촬영을 하고 생김새를 트위터로 전송하는 등 몇 가지 신속한 조치를 취했다. 엉덩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주장하는 듯 당나귀는 비루먹은 엉덩이를 천천히 흔들며 멀어져갔다. 당나귀 신사 백팔만 씨는 요즘 처녀들이 왜 이렇게 호들갑스러운지 개탄하였다.
마침내 당나귀는 시민 공원에 이르렀다. 여기가 당나귀의 쉼터 중 하나였다. 거상 시는 최근 백팔만 씨에게 도심 내 몇 군데에 한해 당나귀 체류를 허가하였다. 당나귀 신사가 동물의 권리 조항과 동물 권리 수호 단체들에 대해 해박해 시 행정에 어떤 해를 끼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신사는 시민 공원 정자 기둥에 당나귀를 묶어두고 맞은 편 고층빌딩 7층의 ‘강박 증권회사’로 올라갔다. 오늘은 경마가 쉬는 평일로 신사는 11시 이전에 반드시 사야 할 주식이 있었다. 지난주엔 경마장에 갔다가 어떤 자가 어떤 시시한 글에다 자기가 당나귀 신사라고 우기는 바람에 몹시 놀란 적이 있었다. 이 나라에 당나귀 신사가 나 말고 또 있단 말인가? 그 자는 말로만 떠들지 훌륭한 매매솜씨는 없다고 봐야 했다. 매매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진정한 당나귀 신사 백팔만 씨가 거상 증권회사로 들어섰을 때, 아는 척 하거나 인사를 건네는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컴퓨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거나 휴대폰에다 대고 지금 당장 그놈의 주식을 사거나 팔라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당나귀 신사는 곧장 트레이딩 룸으로 들어갔다. 거기엔 이미 세 사람이 나와서 컴퓨터를 하나씩 꿰차고 주식을 사고파느라 여념이 없었다. 집에서 매매하기가 여의치 않거나 투자 분위기를 느끼며 실시간 정보를 얻어듣길 원하는 트레이더들이 이곳으로 매일 출근하고 있었다. 이들은 큰 손이 아니었다. 몇 천만 원 대의 소액 투자자들로 하루라도 매매를 하지 않으면 몸이 아픈 사람들이었다. 증권회사에서 이들에게 바라는 건 단 한 가지였다. 끊임없이 사고팔아서 수수료 수입을 잔뜩 올려달라는 거였다. 매매할 때마다 시세 차익을 올리시니 얼마나 좋으시냐는 게 지점장의 말이었다. 매매할 때마다 손해 봐요, 넙치로 불리는 투자자가 그렇게 말했다가 “한 방이면 만회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위로 겸 격려의 말을 들었다. 여직원이 손수 원두커피에 다과를 접대하고, “많이 버세요.” 한마디 하니까 넙치는 또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주문을 처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당나귀 신사는 컴퓨터를 켜고 홈트레이딩 시스템을 깔았다. 신사의 총자산은 오늘부로 이천오백만원이었다. 6개월 전보다 천오백만원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전문가라고 알려진 동창 ‘탈법자’에게 의논을 하자 그는 오늘 오전 11시 정각에 칠성 데크가 일시 하락할 때 왕창 사들어 가라고 지시를 했다. 해서 당나귀 신사가 지금 칠성 데크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경마라면 보통 하루에 8,9회 베팅했지만 주식은 그보다 훨씬 자주 매매하게 되었다. 주식은 오직 코드 치고 매수 매도만 때리면 빛보다 빨리 주문이 날아가 냉큼 체결이 되고 이후는 롤러코스터가 진행되니 중독성이 경마보다 약하다 할 수 없었다. 잃으면 만회해보겠다는 욕심으로, 벌면 더 벌겠다는 욕심에 도저히 매매를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경마도 이런 식으로, 기진맥진할 정도로 자주 베팅해서 그는 적지 않은 돈을 허공에 날리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만회할 수 있을까? 동창이자 투자 전문가인 일명 ‘탈법자’의 지도편달을 받기로 한 건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치솟던 칠성 데크가 갑자기 하강하기 시작했다. 오전 11시 정각이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저작권자 © 말산업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