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익 부경마주협회장
중국 춘추시대 고사 가운데 귤화위지(橘化爲枳)란 말이 있다. 강남에서 자란 귤을 회하(淮河) 건너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것인데, 씨가 같더라도 환경이 다르면 엉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뜻이다. 요즘같이 하루아침에도 환경이 상전벽해처럼 변하는 시대에는 귤 바로 옆에서 탱자가 자란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듯싶다.

요즘 서울 용산구에 있는 경마 장외발매소 이전 문제가 이전지역 주민들과의 마찰로 시끌시끌하다. 기존에 운영 중이던 장외발매소 건물의 시설이 낙후되고 환경이 열악해 최신식 건물로 이전하려 하지만, 이전 예정지역 주민들이 경마 장외발매소 입주를 극렬 반대하고 있다. 이전장소가 학교 환경위생 정화구역 기준인 200m를 넘어서는 등 법적 여건도 충족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경마 도박장’이 들어서면 학생들의 교육환경이 악화된다고 주장한다.

엄연히 법원 판결 전까지는 모든 피의자에 대해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하는 대한민국 사법체계는 논외로 하더라도 모든 경마 소비자를 학생들에게 해코지할 수 있는 잠재적 범죄자로 단정 짓고, 학생들까지 반대 집회에 참여시키는 어른들의 모습은 참으로 우려스럽다. 사회의 예비 구성원인 학생들에게 대화와 타협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직접 체험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의 일방적 의견에 무조건 따르라고 강요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경마는 학생들이 학업을 중단하고 거리로 뛰쳐나올 정도로 심각한 사회적 문제일까? 사실 경마의 종주국인 영국에서 경마는 축구보다 더 인기 있는 스포츠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자신의 경마장과 경주마를 소유하고 있으며, 마주(馬主)는 대부분 기업가·의사·연예인 등 사회지도층이다. 유명한 경마대회는 수십억원의 상금이 걸려 있고, 이를 보기 위해 외국에서 관광객이 물밀듯이 몰려오기도 한다. 마권을 파는 장외발매소도 복권방처럼 주택가 곳곳에 퍼져 있고, 심지어는 레스토랑이나 호프집에서도 경마를 즐길 수 있다. 영국뿐만 아니라 독일·프랑스·미국·일본·홍콩·싱가포르 등 대부분의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국과 영국 모두 똑같은 제도와 규칙으로 경마를 시행하고 있건만, 왜 경마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귤과 탱자의 차이보다 더 심한 것일까? 업무상 외국 출장을 갈 때마다 짬을 내서 경마 관련 시설을 견학했지만, 그 어디에서도 장외발매소가 소위 ‘범죄의 소굴’이라고 지역 주민들이 반대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장외발매소는 주변의 평범한 이웃들이 그저 야구나 축구처럼 경마를 관람하며 여가를 즐기는 공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산업이 그러하듯 경마에도 부작용이 없지는 않다. 그것은 영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영국은 경마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해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오랜 시간을 거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왔다. 경마의 순기능을 강화하고 그 이익을 공동체 발전에 사용한 결과, 영국은 경마 개최를 통해 천문학적인 관광 수입을 거두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며 국가경제 발전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영국에서 축구는 멈춰도 경마는 멈출 수 없다는 자부심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용산 장외발매소처럼 귤이 탱자가 된 이유를 근본적으로 규명하고 해결하기에 앞서 단지 열매가 다르다는 이유로 무조건 배척한다면 사회적 갈등은 결코 해결될 수 없다. 더욱이 이성적이고 합리적 판단이 아닌 주관적 감정에 의지해 다름(異)을 틀림(誤)으로 호도하면 대화와 타협은 설 자리를 잃는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복잡해질수록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용산 장외발매소 문제가 우리 사회가 한층 더 성숙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강용익 부경마주협회장

작 성 자 : 이용준 cromlee21@krj.co.kr
저작권자 © 말산업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