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미국 원정에서 1마일 이상을 돌파한 여제, 더 많은 기회를 노려보다

2023년 영국과 아일랜드 경마에서 가장 눈에 띄게 활약한 수말이 이전 화에서 다룬 오귀스트 로댕이었다면, 암말은 자타공인 인스파이럴(Inspiral)일 것이다. 다섯 번의 G1에 나서 3승과 2착 한 번을 기록했으며, 세 차례의 G1 우승을 각각 다른 나라에서 기록했다. (프랑스/영국/미국) 

(출처: PA Media)
(출처: PA Media)

2019년에 태어난 인스파이럴은 1마일 경주에서 독보적인 폼을 보여주는 말이다. 왜냐하면 훌륭한 부모로부터 양혈을 받았기 때문이다. 부마는 마일 노선에서 전승을 자랑하는 영국의 전설적인 경주마 프랑켈(Frankel)이고, 모마 역시 마일 노선에서 G1 1승, G2 3승을 기록한 셀커크(Selkirk)의 자마 스타스코프(Starscope)이다. 

 

인스파이럴은 신마전을 승리한 이후 G1 2승을 포함 5연승을 달렸으며, 22년 7월 G1 팔머스 스테이크스(Falmouth Stakes)에서 2착하면서 첫 패배를 기록했다. 하지만 한 달 후 도빌에서 열린 자크 르 마루아상(Prix Jacques Le Marois)를 우승하며 3세마 시즌이 가기 전에 G1 3승을 달성했다. 하지만 2022년 영국 평지 경마의 그랑프리, 챔피언스 데이에 열린 퀸 엘리자베스 2세 스테이크스(Queen Elizabeth II Stakes)에서 9두 중 충격적인 6착을 기록하면서 아쉬움 속에 3세마 시즌을 마쳤다. 그래도 연말에 열린 2022 카르티에 어워드에서 올해의 3세 암말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사실 인스파이럴의 2023년은 순탄치 않게 시작했다. 인스파이럴의 2023년 첫 번째 경주는 로열 애스콧(Royal Ascot) 기간 직선 코스에서 열리는 G1 퀸 앤 스테이크스(Queen Anne Stakes). 1번 인기는 G1 5승의 4세 수말이며 고돌핀 소속인 모던 게임즈(Modern Games)였고, 인스파이럴이 2번 인기였다. 그러나 우승을 차지한 말은 33/1이란 큰 배당률을 받은 다크호스이자 역시 프랑켈의 자마인 트리플 타임(Triple Time). 인스파이럴은 트리플 타임과 2펄롱을 남긴 시점부터 선두 경쟁을 펼쳤으나, 마지막에 힘이 다소 부치며 목차로 2착을 기록했다. 

2023 Queen Anne Stakes(G1), Ascot, 1m Straight, Good

인스파이럴의 2023년 두 번째 경주는 굿우드에서 열린 G1 서식스 스테이크스(Sussex Stakes). 이 경주는 마일 최강자의 소리를 듣던 3세마 패딩턴(Paddington)이 네 번째 G1 트로피와 7연승을 도전하는 자리였다. 패딩턴이 4/9라는 상당히 낮은 배당률을 받은 반면에 인스파이럴은 포화한 잔디 상태에 대한 주력이 검증된 적이 없었기에 5/1이란 높은 배당률을 받았다. 우려한 대로 인스파이럴은 진창길에서 제대로 뻗질 못했고, 선두와 8.5마신차를 기록하며 가장 마지막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패딩턴은 한 번도 선두를 빼앗기지 않은 채 도주하며 우승했다. 

 

꼴찌의 충격이 믿기지 않았던 것일까? 진영은 인스파이럴의 주력에 문제가 있는게아니라 마장에 적응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하면서 서식스 스테이크스로부터 고작 11일 후에 예정된 프랑스 원정을 강행한다. 이렇게 2023년 8월 13일 인스파이럴은 도빌에서 자크 르 마루아상 챔피언 방어전에 나섰다. 부족한 휴식 시간과 원정의 부담으로 인해 2연패를 노리는 인스파이럴이었음에도 78/10이라는 더 높아진 배당률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인스파이럴은 작년의 즐거운 기억과 주전 기수 프랑키 데토리(Frankie Dettori)의 노련함을 바탕으로 트로피를 지키는 데 성공한다. 마지막까지 1번 인기 빅 락(Big Rock)이 인스파이럴을 물고 늘어졌지만, 인스파이럴은 1 1/4마신차를 만들었다. 한편 데토리 기수는 이번 우승으로 자크 르 마루아상 4연패를 달성했다. (2020-21 팰리스 피어(Palace Pier), 2022-23 인스파이럴)

2023 Prix Jacques Le Marois(G1), Deauville, 1m, Good to Soft

우승의 감을 되찾은 인스파이럴은 10월 7일 열린 G1 선 채리엇 스테이크스(Sun Chariot Stakes)에서 자신이 건재하며, 혼성경주가 아닌 암말 경주에서는 적수가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압도적으로 낮은 10/11이라는 배당률 답게 인스파이럴은 정석적인 선입 전략을 선보이며 2펄롱을 남기고 선두를 탈환, 그대로 3 1/4마신차 손쉬운 승리를 따낸다. 데토리 기수는 이번 경주를 통해 뉴마켓 경마장 500승 달성이라는 위업을 덤으로 세웠다. 

2023 Sun Chariot Stakes(G1), Newmarket, 1m Rowley Mile, Goot to Firm

진영은 인스파이럴의 2023년 시즌 마지막 경주로 작년에 치욕을 선사한 퀸 엘리자베스 2세 스테이크스로 선택했다. 하지만 챔피언스 데이 내내 내린 폭우로 인해 애스콧 경마장이 일부 경주의 코스를 변경해야 할 정도로 마장 상태는 상당히 불량했다. 습한 마장에 자신이 없던 인스파이럴은 결국 출주 포기를 선언했고, 대신 진영은 한 번도 나서지 않은 미국 원정을 선언한다. 

 

사실 인스파이럴은 자크 르 마루아상을 우승한 덕분에 브리더스컵 마일(Breeders' Cup Mile) 출주권을 확보한 상태였다. 하지만 진영은 기왕 새로운 도전에 나선 김에 인스파이럴이 지금까지 뛰어본 적이 없는 거리를 선택한다. 그렇게 인스파이럴은 산타 아니타(Santa Snita) 1마일 2펄롱 코스에서 열린 G1 브리더스컵 필리 & 메어 터프(Breeders' Filly & Mare Turf)에 나선다. 

첫 장거리 원정이라는 부담과 한 번도 나서본 적이 없는 1마일 2펄롱 거리라는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인스파이럴은 5/2 배당률을 받고 1번 인기가 되었다. 가장 강력한 적수는 갈릴레오(Galileo)의 자마인 웜 하트(Warm Heart)였다. 웜 하트는 G1 요크셔 오크스(Yorkshire Oaks)와 G1 프리 베르메이유(Prix Vermeille)를 연달아 우승하며 암말 중거리 전선에서 우수한 성과를 자랑하고 있었다.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마군을 이끌어 간 말은 예상대로 인 이탈리안(In Italian)이었다. 자신만의 도주를 통해 마일 전선에서 G1에서 4승을 딴 인 이탈리안은 초록색 옷을 입은 기수를 태우고 질주했다. 인스파이럴은 평소보다 2펄롱 더 긴 거리의 경주에 나서는 것을 의식한 것처럼 후방에서 대기했다. 최종 코너를 마친 시점, 인스파이럴은 마군 속에 갇히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최종 직선에 들어선 후 단단함을 바탕으로 린디(Lindy)를 밀쳐내고 우측으로 돌파하고 전방을 확보했다. 이때 웜 하트는 선두를 줄곧 유지하던 인 이탈리안을 따라붙기 시작한다. 마지막 1펄롱을 앞두고 인스파이럴은 선두와 2.5마신 뒤처져있었지만, 용왕매진하며 자신보다 앞에 있던 7두를 추월하기 위해 질주했다. 그리고 위닝 포스트를 단 2미터 남기고 7번째 말 웜 하트를 제압하고 목차로 승리한다.  

2023 Breeders' Cup Filly & Mare Turf(G1), Santa Anita Hillside, 1m 2f, Firm

2024년 인스파이럴은 두 가지 도전을 시작한다. 첫 번째는 거리 적성. 인스파이럴의 조교사 존 고스던(John Gosden)은 브리더스컵 필리 & 메어 터프를 우승한 후 인터뷰에서 인스파이럴이 "마치 조교사가 내 적정 경주 거리를 그동안 파악하지 못 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며 인스파이럴의 주력을 평가했다. 그러면서 고스던 조교사는 2024년에는 인스파이럴이 인터내셔널 스테이크스(International Stakes)처럼 1마일 2펄롱 경주에 나설 수 있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는 변경될 주전 기수. 인스파이럴은 데뷔전을 제외한 나머지 12번의 경주에서 데토리 기수와 합을 맞췄다. 하지만 데토리 기수는 유럽에서 기수 활동을 그만두고 미국에서 활동한다고 선언한 상태다. 물론 데토리 기수가 은퇴를 번복한 것처럼 인스파이럴만 기승하기 위해 유럽으로 가끔 돌아올 지도 모른다.

과연 지금까지 마일의 여제로 군림했던 인스파이럴이 2024년에는 새로운 기수와 함께 자신의 통치 영역을 1마일 2펄롱까지 확장할 수 있을까? 이 말이 올해 어떤 행보를 건강하게 보여줄지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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