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 미문의 두바이 터프 3연패, 노익장을 발휘하러 경주에 복귀한다

영국 헌정사에서 최악의 총리로 손꼽히는 인물은 프레더릭 노스(Frederick North, 1732-1792)이다. 1770년부터 1782년까지 영국 제12대 총리로 재임하는 동안 끊임없이 전쟁이 이어졌다. 그의 업적(?) 중 교과서에 가장 인상적으로 기록된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의 임기 중 미국이 영국을 상대로 독립을 선언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는 역사상 두 번째로 불신임 투표로 물러난 총리이며, 최초로 그가 이끄는 내각이 불신임 투표 결과로 물러나게 되었다.  

오늘 소개할 경주마인 로드 노스(Lord North)는 이런 훌륭한(?) 위인의 이름을 물려받았다. 2016년생으로 평지 경주마 치곤 고령까지 경주마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이 말은 그래도 프레더릭 노스와 비교해 악명보다는 인기를 더 많이 누리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메이단(Meydan) 경마장에서 열리는 G1 두바이 터프(Dubai Turf) 3년 연속으로 차지했으며, 벌어들인 총상금이 무려 600만 파운드(한화 약 101억 2,764만 원)에 달한다. 지금까지의 전적은 17전 8승이다. 

(출처: Thoroughbred Daily News)
(출처: Thoroughbred Daily News)

주 활동 무대가 영국인 로드 노스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왕조가 운영하는 고돌핀(Godolphin)이 생산한 경주마로 마주는 현 아랍에미리트 대통령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얀(Mohamed bin Zayed al-Nahyan)이다. 부마는 고돌핀이 자랑하는 종마이자 아이리시 2,000기니 스테이크스(2,000 Guineas) 우승마 두바위(Dubawi), 모마는 미국 출신의 나좀(Najoum)이다. 모부마는 G1 6승과 2000년 카르티에 어워드 올해의 말(Cartier Horse of the Year) 수상을 자랑하는 자이언츠 커즈웨이(Giant's Causeway)이다. 

2세마 데뷔전을 가볍게 따낸 로드 노스는 3세마 첫 경주에서 낙승했지만 그 다음 경주에서 기성난을 보이면서 꼴찌를 기록했다. 진영에서는 로드 노스의 경주력에는 의심이 없지만 기성난 극복이 필요하다면서 과감하게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다. 그렇게 2019년 6월 중성화 수술을 받은 로드 노스는 그로 인해 남은 클래식 노선에 도전할 수 없게 되었다. 수술 이후 로드 노스는 클래스2 핸디캡 경주와 리스티드 경주에서 각각 1승씩 챙기며 3세마 시즌을 비교적 조용하게 보냈다. 

중간 이상 정도의 경력을 보낸 로드 노스는 4세가 되어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봄까지 휴식을 취하고 6월이 되어서 2020년 시즌 복귀전을 치렀는데, 출주한 G3 브리가디어 제라드 스테이크(Brigadier Gerard Stakes)를 목차로 거머쥐었다. 그 기세를 이어 로드 노스는 10일 후 열린 로얄 애스콧(Royal Ascot)의 G1 프린스 오브 웨일스 스테이크스(Prince of Wales's Stakes)에 나섰다.

호주에서 G1 2승을 기록했고 2019년 G1 챔피언 스테이크스(Champion Stakes)에서 2착한 아데이브(Addeybb), 2019년 G1 인터내셔널 스테이크스(International Stakes)와 G1 파리 그랑프리(Grand Prix du Paris) 우승마 재팬(Japan), 2020년 G1 제벨 하타(Jebel Hatta) 우승마 바니 로이(Barney Roy) 등 쟁쟁한 경쟁마들과 맞붙은 로드 노스는 마지막 1펄롱을 남기고 모두를 제치는 짜릿한 추입을 선보이면서 첫 G1 트로피를 획득했다. 2착마 아데이브와의 마신차는 3과 1/4마신. 

2020 Prince of Wales's Stakes(G1), Ascot, 1m 2f, Good

그러나 로드 노스는 이후 나선 세 번의 G1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인터내셔널 스테이크스 3착을, 챔피언 스테이크스에서는 10두 중 꼴찌, 그 후 나선 미국 원정, G1 브리더스 컵 터프(Breeders' Cup Turf)에서는 4착을 기록했다. 프린스 오브 웨일스 스테이크스의 우승이 우연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2020년 시즌을 마치고 시작한 2021년 시즌. 진영에서는 전초전 없이 곧바로 두바이 원정을 선택했다. 140일간의 휴식을 취한 후 등록한 경주는 총상금 400만 달러(한화 약 53억 3,000만 원)의 G1 두바이 터프(Dubai Turf). 두바이 터프의 전초전인 제벨 하타를 우승한 로드 글리터스(Lord Glitters) 외 다른 유력마가 보이지 않은 가운데 로드 노스는 11/8이라는 배당률에 걸맞게 편안한 승리를 기록했다. 그러나 경주 후 진행한 신체검사에서 비강출혈이 발견되면서 로드 노스는 2021년 시즌을 더 치르지 않고 장기 휴양에 들어갔다.

2021 Dubai Turf(G1), Meydan, 1m 1f, Good

그렇게 1년을 쉬면서 보낸 로드 노스는 링필드(Linfield)에서 열린 G3 윈터 더비 스테이크스(Winter Derby Stakes)에서 건강함을 증명하며 2착했다. 그리고 한 달 후 두바이 터프 왕관을 사수하기 위해 원정길에 올랐다. 작년 경주와 달리 이번에는 경쟁마들의 수준이 높아졌다. 2021년 G1 NHK 마일컵(NHK Mile Cup) 우승마 슈넬 마이스터(Shnell Meister), 2021년 G1 선 채리엇 스테이크스(Sun Chariot Stakes) 우승마 사프란 비치(Saffron Beach), 작년 두바이 터프 2착마 방 더 가드(Vin De Garde) 등과 맞붙어야 했다. 

경주는 모두가 예상한 구도로 진행되었다. '레이와의 트윈 터보(Twin Turbo)'로 불리는 일본의 대도주마 판탈라사(Panthalassa)가 자연스럽게 전진하면서 페이스를 끌어갔고, 로드 노스는 중단 이후에서 힘을 모으면서 나아갔다. 최종 코너를 돈 시점에서도 선두를 뺏기지 않은 판탈라사는 마지막 1펄롱을 앞두고 2마신차 선두를 유지했고, 로드 노스와 방 더 가드가 선두를 잽싸게 추격하기 시작했다. 결승선을 통과할 때 까지 힘이 다하지 않았던 판탈라사의 1등이 확실한 상황에서 로드 노스와 방 더 가드가 너무나 바짝 붙어버린 나머지 육안으로 순위를 확인할 수 없었다. 판독 결과 판탈라사와 로드 노스는 동착, 방 더 가드는 코차로 3착이 되었다. 이렇게 로드 노스는 두바이 터프 2연패를, 판탈라사는 경력 첫 번째 G1을 일본이 아닌 두바이에서 기록하게 되었다. 

2022 Dubai Turf(G1), Meydan, 1m 1f, Good

두바이에서 너무 어렵게 왕좌를 지켜냈던 것일까? 아니면 두바이가 이 경주마에게 완벽한 경주 환경인 것일까? 로드 노스는 2022년 시즌에 치른 나머지 세 번의 G1에서 이렇다 할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모두 하위권에 머물러버렸다. 진영에서는 G1 이클립스 스테이크스(Eclipse Stakes) 패배 이후 다시 내년 시즌을 기약하기로 결정한다.

2023년 시즌의 시작은 2022년과 동일하게 이뤄졌다. 다만 차이는 로드 노스가 2023년에 열린 윈터 더비 스테이크스에서는 3 1/4마신차 우승을 기록했단 것이다. 그리고 로드 노스는 다시 두바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어느덧 노장 반열에 든 로드 노스에게 전 세계의 마일 전문 경주마들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2022년 G1 마일 챔피언십(Mile Championship) 우승마 세리포스(Serifos), 2022년 G1 사라토가 더비 인비테이셔널 스테이크스(Saratoga Derby Invitational Stakes) 우승마 네이션스 프라이드(Nations Pride), 그리고 2022년 G1 로킨지 스테이크스(Lockinge Stakes)와 퀸 앤 스테이크스(Queen Anne Stakes)에서 바이드(Baaeed)에 밀려 각각 2착을 기록한 리얼 월드(Real World) 등이 출주했다. 

경주는 전형적인 로드 노스의 경주였다. 3번 게이트를 받은 로드 노스는 차분하게 반까지 힘을 모았고, 마지막 100미터를 남기고 선두를 달리던 네이션스 프라이드를 제쳐냈다. 결승선을 앞두고 바깥쪽에서 다논 벨루가(Danon Beluga)가 폭발적인 속도로 따라왔지만, 다논 벨루가가 우승하려면 못해도 30m는 더 필요했다. 

2023 Dubai Turf(G1), Meydan, 1m 1f, Good

7살이 된 로드 노스는 두바이 터프 우승 후 내년 두바이 터프를 기약하면서 장기 휴식에 들어갔다. 그리고 진영에서는 2024년 시즌 복귀전도 윈터 더비 스테이크스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번 윈터 더비 스테이크스는 이전과 환경이 달라졌다. 우선 경마장이 링필드에서 사우스웰(Southwell)로 변경되었고, 그로 인해 주로의 재질이 폴리트랙(Polytrack)에서 타페타(Tapeta)로 바뀌었다. 폴리트랙과 타페타는 영국에서 4계절 평지 경주를 진행할 수 있게 해주는 인공재료를 활용한 전천후(All-weather) 주로의 종류이다.

영국에서는 더트 경주가 없는 대신에 이를 전천후 경주가 대체한다. 폴리트랙은 규사와 재활용 카펫, 스판덱스와 고무 등을 왁스로 결합한 주로고, 타페타는 규사와 섬유, 고무를 왁스와 결합한 주로다. 두 주로 모두 경주마 안전을 위해 잔디처럼 표면 아래에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층을 추가로 설치한다. 주로의 특성상 뒤로 파이는 정도가 잔디나 모래에 비해 적으며, 그로 인해 잔디 주로의 양호(Good) 혹은 양호에서 건조(Good to Firm) 정도와 유사하다는 평을 받는다. 아무래도 재질이 미묘하게 다르기에 폴리트랙과 타페타의 재질이 거의 비슷하지만 경주마의 주력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가 사우스웰에서 개최된 윈터 더비 스테이크스는 이전 대회보다 1펄롱 더 늘어난 1마일 3펄롱에서 열리게 되었다. 여러 측면에서 변화를 경험해야 는 이유로 로드 노스의 조교사인 존 고스던(John Gosden)은 사우스웰에 1마일 2펄롱 경주가 없는 것이 아쉽지만 어차피 로드 노스의 목표는 두바이 터프에 맞춰서 주력을 회복하는 것이라 밝혔다. 2월 24일에 치른 이번 윈터 더비 스테이크스의 결과는 1마신차 2착이었다. 1년 동안 경주에 나서지 않은 여파가 보였지만, 그래도 노련하게 경주를 마쳤다. 

로드 노스가 두바이 터프 4연패를 이루는 데 마주할 수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기수 변경일지도 모른다. 지난 세 번의 두바이 터프에서 로드 노스와 함께한 기수는 살아있는 전설 프랭키 데토리(Frankie Dettori)였다. 그러나 데토리 기수가 2024년부터는 미국과 국제무대에서만 활동하기로 발표했다. 두바이 터프가 열리는 두바이 월드컵 미팅(Dubai World Cup Meeting)에 참석하는 것은 확정되었지만, 이것이 기수를 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그가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경마 전문 여행사의 활동을 위해서인지 확실하지 않다. 

한 대회를, 특히 평지 G1 대회는 3년 연속 우승한 말은 제법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전 세계를 돌아보더라도 평지 G1을 4연패 한 말은 정말 드물다. 짧은 경주마의 수명과 종마 전환 등의 요인으로 인해 같은 대회를 네 번 연속 나가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G1 4연패를 달성한 경주마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호주 경마 역사상 최강의 말이자 G1만 25승을 챙긴 윙크스(Winx)는 무려 세 종류의 G1에서 4연패를 달성했다. 영국과 아일랜드 경마에서 대표적인 평지 G1 4연패 경주마는 바타아시(Battaash)와 스트라디바리우스(Stradivarius)로, 각각 2017~2020 킹 조지 스테이크스(King George Stakes)와 굿우드 컵(Goodwood Cup)을 독점했다. 도쿄대상전(Tokyo Daishoten)을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우승한 오메가 퍼퓸(Omega Perfume)은 일본 경마에서 유일하게 평지 G1 4연패 달성의 위업을 달성한 말이다.

과연 로드 노스는 해외 원정을 떠나 단일 평지 G1 4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할 수 있을까? 2024년 두바이 터프는 3월 30일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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