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관의 마지막 한 자리를 차지한 경주마, 2024년에 재도약을 꿈꾼다

경마계에는 클래식 세대라고 불리는 세 살짜리 경주마만 나설 수 있는 특별한 경주들이 있다. 같은 세대에서 최강이 누구인지를 겨루기 위해 동년배만 붙을 수 있는 전장이 펼쳐지는 것이다. 수많은 경주 중 최고의 명예가 걸린 세 종의 경주를 우승한 경주마에겐 삼관마(Triple Crown)라는 불멸의 칭호가 붙는다.

각 나라마다 자기만의 삼관을 구성하는 경주가 있다. 영국 경마의 경우 수말은 2,000기니 스테이크스(2,000 Guineas Stakes)와 더비(Derby)를 이긴 말이, 암말은 1,000기니 스테이크스(1,000 Guineas Stakes)와 오크스(Oaks)를 이긴 말이 동커스터(Doncaster)에서 열리는 세인트 레저 스테이크스(St Leger Stakes)를 우승해야 삼관마에 등극할 수 있다. 

사실 영국 경마의 긴 역사에 비해 삼관마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클래식 노선의 거리 구성이 경주마 하나가 모두 도전하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2,000기니와 1,000기니는 1마일, 더비와 오크스는 1마일 4펄롱이다. 당장 이 둘을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경주마부터 많지 않다. 그런데 클래식 다섯 경주 중 경주마에게 가장 혹독한 시련을 안겨주는 경주는 당연 세인트 레저다. 경주 거리가 무려 1마일 6 1/2펄롱(2,921m)이나 된다. 이미 두 개의 관을 차지한 경주마라 하더라도 세인트 레저를 도전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영국에서 마지막 수말 삼관마는 1970년의 니진스키(Nijinsky), 암말 삼관마는 1985년의 오 소 샤프(Oh So Sharp)이다. 한편 가장 근래에 삼관에 근접한 말은 2012년 카멜롯(Camelot)으로, 2,000기니와 더비, 거기에 아이리시 더비(Irish Derby)까지 우승한 후 세인트 레저에 나섰으나 아쉽게 3/4마신차 2착을 기록하며 삼관마가 되지 못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2023년 비록 2,000기니와 더비엔 도전하지 못했지만, 세인트 레저를 따내면서 클래식 경주 우승마에 당당히 오른 말이다. 이마에서 코까지 내려오는 유성이 매력적인 갈색마, 2020년생 컨티뉴어스(Continuous)다. 

(출처: PA Media)
(출처: PA Media)

2023년 영국 클래식 노선 다섯 개의 경주에서 다섯 마리의 우승마가 탄생했다. 그중 둘은 무패전설의 경주마 프랑켈(Frankel)의 자마이며, 하나는 호주의 단거리마 익시드 앤 엑셀(Exceed And Excel)의 자마이다. 나머지 둘의 부마는 영국도, 아일랜드도 아닌 특이하게도 일본 출신이다. 그런데 이 둘의 관계가 재밌다.

더비 우승마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의 부마는 일본 현대 경주의 정점이자 일본에서 13전 12승에 G1을 7차례 우승한 딥 임팩트(Deep Impact)이다. 한편 오늘 이야기 주인공이자 세인트 레저 우승마 컨티뉴어스(Continuous)의 부마는 일본에서 성적이 고작 17전 4승밖에 되지 않고, 통산 G1 우승도 두 차례밖에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말 하츠 크라이(Heart's Cry)에겐 특별한 업적이 있다. 딥 임팩트 일본에서 꺾어 본 유일한 경주마라는. 유독 G1과 연이 없던 하츠 크라이는 2005년 일본 경마의 마지막을 알리는 G1 아리마 기념(Arima Kinen)에서 딥 임팩트의 무패 아성을 무너트렸다. 

컨티뉴어스의 모마는 갈릴레오(Galileo)의 자마 플러프(Fluff)로, 눈에 띄는 경주 성적을 보여주지 못한 채 번식마 생활을 시작했다. 쿨모어(Coolmore)계 회사에 속한 플러프는 컨티뉴어스를 낳기 전 딥 임팩트와 두 차례 교배해 두 마리를 출산했으며, 2019년에도 딥 임팩트와 교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딥 임팩트의 건강 악화로 인해 교배는 이뤄지지 못했고, 대신 하츠 크라이와 교배했다. 즉, 컨티뉴어스의 부마가 딥 임팩트가 될 수도 있었다. 일본 홋카이도 니캇푸초의 파카파카팜(Paca Paca Farm)에서 태어난 컨티뉴어스는 이유 후 아일랜드로 건너가 경주를 준비했다.  

컨티뉴어스는 2022년 8월 20일 커리(Curragh)의 7펄롱 코스에서 100/30이라는 확실한 기대감 속에 데뷔전을 치렀다. 훌륭한 기수 라이언 무어(Ryan Moore)의 지시 아래 컨티뉴어스는 경주 내내 탄탄한 주력을 자랑하면서 1 1/2마신차 낙승을 기록한다. 한 달 후 프랑스로 건너간 컨티뉴어스는 생끌루(Saint-Cloud) 경마장에서 열린 G3 토마 브리용상(Prix Thomas Bryon)에 나섰다. 최종 코너를 돌 때까지 중단에 숨어 있었던 컨티뉴어스는 최종 직선에서 틈새를 파고들었고, 그대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한편 2착으로 들어온 시호스(Syros)는 크리스토프 수미용(Christophe Soumillon) 기수가 캡틴 위어즈바(Captain Wierzba)의 기수 로사 라이언(Rossa Ryan)을 고의로 밀어서 떨어트린 행위가 적발되어 실격되었다. 

2022 Prix Thomas Bryon(G3), Saint-Cloud, 1m, Very Soft

컨티뉴어스의 조교사 에이든 오브라이언(Aidan O'Brien)은 컨티뉴어스의 거리 적성이 마일보다는 중장거리라고 판단해 2,000기니보다는 더 긴 거리의 경주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그렇게 정해진 컨티뉴어스의 3세 시즌 첫 경주는 G2 단테 스테이크스(Dante Stakes). 직전 두 차례 경주에서 우승한 말이 각각 더비와 아이리시 더비를 우승한 전력이 있기에 더비 전초전 중 하나로 평가받는 경주이다. 더비 출주를 예고한 말 여럿과 경쟁한 끝에 컨티뉴어스는 1 1/2마신차 3착을 기록하고 말았다. 마지막 1펄롱까지 끈질기게 추격을 이어갔지만, 뒷심이 부족한 나머지 앞에 있던 두 마리를 제치지 못했다. 

3착의 결과가 아쉬웠던 진영에서는 컨티뉴어스가 아직 완전히 성장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더비를 포기하고 대신 경험을 더 쌓기 위해 프랑스 원정을 다시 선택했다. 4번째 경주는 '프랑스의 더비'로 불리는 G1 프리 두 조케 클뤼브(Prix du Jockey Club). 그러나 경험을 쌓기에 샹티이(Chantilly) 경마장의 수준은 너무나 높았다. 이후 3세마로 G1 개선문상(Prix de l'Arc de Triomphe)을 제패하는 에이스 임팩트(Ace Impact), G1 퀸 엘리자베스 2세 스테이크스(Queen Elizabeth II Stakes) 우승마 빅 락(Big Rock), G1 파리대상(Grand Prix de Paris) 우승마 피드 더 플레임(Feed The Flame)이 출주했으며, 프랑스의 2,000기니에 해당하는 G1 풀 데세 드 풀랭(Poule d'Essai des Poulains)을 우승한 마르하바 야 사나피(Marhaba Ya Sanafi)도 2관마에 도전했다. 경주 결과 컨티뉴어스는 우승마 에이스 임팩트와 15 1/2마신차 8착. 

클래식 시즌 초반 더비 우승도 점쳐지던 컨티뉴어스의 미래가 불투명해지려는 시점, 컨티뉴어스는 로열 애스콧 주간에 열린 G2 킹 에드워드 7세 스테이크스(King Edward VII Stakes)에서 반전을 노려봤지만 이 역시 무산되었다. 더비에서 오귀스트 로댕에게 반 마신차로 패배한 킹 오브 스틸(King Of Steel)이 컨티뉴어스를 3 1/2마신차로 꺾고 우승했다. 그래도 컨티뉴어스의 장점인 지구력을 확인할 수 있던 기회였기에 희망의 빛이 보였다.

두 달을 쉬고 다시 경주에 나선 컨티뉴어스는 세인트 레저의 트라이얼인 G2 그레이트 볼티저 스테이크스(Great Voltigeur Stakes)로 경주에 복귀했다. 레이팅이 엇비슷한 다섯 마리의 경주마가 출주한 가운데 1번 인기는 G2 퀸즈 바스(Queen's Vase)를 우승해 프랭키 데토리(Frankie Dettori) 기수의 마지막 로 애스콧을 우승으로 함께 장식한 그레고리(Gregory). 2번 인기인 컨티뉴어스는 시작과 동시에 최후방으로 빠지며 전방을 살펴보는 형세를 취했다. 5펄롱에 달하는 요크의 긴 최종 직선을 마주하기까지 가장 뒤에 있었던 컨티뉴어스는 2펄롱을 남기고 서서히 속도를 올렸다. 이윽고 경주 내내 자기 앞에 있던 네 마리를 순서대로 떨쳐냈고 2착마 캐슬 웨이(Castle Way)와 3 3/4마신차 거리를 벌리면서 11달 만에 우승 트로피를 다시 차지했다.

2023 Great Voltigeur Stakes(G2), York, 1m 4f, Good to Firm

흐름을 탄 컨티뉴어스의 다음 행선지는 의심의 여지 없이 동커스터였다. 세인트 레저의 전초전 중 하나인 G3 제프리 프리어 스테이크스(Geoffrey Freer Stakes) 우승마 어레스트(Arrest), 영국 왕실의 자랑이자 또 다른 세인트 레저 트라이얼인 G3 고든 스테이크스(Gordon Stakes) 우승마 데저트 히어로(Desert Hero), 전 경주에서 맞붙었던 그레고리가 출주했다. 마주가 같으며 같은 마사에서 동동락한 타워 오브 런던(Tower of London)*, 덴마크(Denmark), 알렉산드로폴리스(Alexandroupolis)도 경주에 나섰다. 

동커스터 경마장과 요크 경마장은 둘 다 좌회전 코스와 아주 긴 최종 직선을 가졌다는 점에서 제법 유사하다. 컨티뉴어스는 그레이트 볼티저를 우승한 방식을 그대로 세인트 레저에도 가져왔다. 최종 코너를 돌 때까지 힘을 모아둔 컨티뉴어스는 서서히 안쪽 코스를 파고들었고, 2펄롱 마크를 앞에 두고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선두를 채갔다. 나머지 말들에겐 컨티뉴어스를 물고 늘어질 여력이 없었다. 컨티뉴어스는 위닝 포스트를 당당하게 제일 먼저 통과하면서 2023년 영국 클래식 경주의 마지막 트로피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버렸다. 

2023 St Leger Stakes(G1), Doncaster, 1m 6 1/2f, Soft

*주: 타워 오브 런던은 2024년 2월 24일 사우디아라비아 킹 압둘아지즈(King Abdulaziz) 경마장에서 열린 G3 레드 시 터프 핸디캡(Red Sea Turf Handicap)에서 우승하며 총획상금 부분에서 컨티뉴어스보다 두 배 이상 번 경주마가 되었다.

컨티뉴어스의 2023년 시즌의 마지막 경주, 개선문상을 치르기 위해 다시 비행기에 탑승했다. 개선문상 답게 훌륭한 주력을 자랑하는 G1 우승마가 다수 모였다. 자신에게 15마신차 대패를 안겨준 에이스 임팩트, 2022년 아이리시 더비와 2023년 G1 생끌루대상(Grand Prix de Saint-Cloud) 우승마 웨스트오버(Westover), 2022년 파리대상 우승마 오네스토(Onesto), 2022년 G1 챔피언 스테이크스(Champion Stakes) 우승마 베이 브리지(Bay Bridge), 웨스트오버를 꺾고 2023 G1 킹조지6세 & 퀸엘리자베스 스테이크스(King George VI & Queen Elizabeth Stakes) 우승마 후쿰(Hukum), 2023년 베를린대상(Grosser Preis von Berlin) 우승마 심카 밀(Simca Mille) 등 출주마 15마리 중 11마리가 G1 우승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컨티뉴어스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출주마 전체가 최종 코너를 돈 상태에서도 빽빽한 마군을 형성한 가운데 바깥쪽에서 에이스 임팩트가 가장 먼저 돌파를 시도했고, 다른 말들이 이를 따라잡지 못했다. 컨티뉴어스는 지난 패배보단 선전하면서 게시판의 마지막인 5착을 기록했지만, 여전히 에이스 임팩트에게 3 1/2마신 떨어진 채 결승선을 통과했다. 

2024년에도 경주마 경력을 이어갈 컨티뉴어스는 아직 어떤 경주에 나설지 발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말이 아직 초장거리 경주에 적합한지 주력이 드러나지 않은 만큼, 골드 컵(Gold Cup)이나 굿우드 컵(Goodwood Cup)보다는 5월 엡솜(Epsom)에서 열릴 1마일 4펄롱 경주 코로네이션 컵(Coronation Cup)이 일차적 목표가 될 가능성이 있다. 과연 컨티뉴어스는 새해에도 이름처럼 경주마 경력을 훌륭하게 이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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