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퀸즈투어의 첫 번째 동아일보배의 주인공은

퀸즈투어의 첫 관문 동아일보배에서 가장 기대되는 것은 즐거운여정과 원더풀슬루의 라이벌리즘에 대한 것이었다. 즐거운여정은 원더풀슬루와 맞붙어 단 한 번을 제외하고 전부 우승을 따내었다. 원더풀슬루는 언제나 즐거운여정의 뒤를 바짝 쫓는 추격자였지만, 트리플 티아라를 뛰어넘는 것은 오직 한 번뿐이었다.

나는 그 둘 중 즐거운여정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 아이에게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즐거운여정의 트리플 티아라의 마지막 여정인 경기도지사배는 나의 첫 대상경주 촬영이었고, 그때의 열기가 내 마음 한켠에 불꽃을 지폈다. 본격적으로 경마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였다. 나의 경마 인생이 시작된 건 바로 즐거운여정의 트리플 티아라 달성 그 순간부터였다.

 

5번 즐거운여정과 서승운 기수 ⓒ최현성 전문기자

지난 대통령배때 이후 처음 얼굴을 본 즐거운여정은 어딘가 낯설었다. 분위기가 조금 더 날카로워진 것만 같았다. 차분하다고 느꼈던 지난날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관리사에게 기대는가 하면, 고개를 들었다 떨궜다 하며 어수선한 모습을 보여줬다. 힘이 너무 넘쳤던 걸까.

우직하고 단단한 체격의 서승운 기수가 즐거운 여정에게 기승했다. 누군가 말하기를, 서승운 기수야 말로 기수중 가장 기수다운 몸을 가지고 있단다. 작고 다부지며 등과 어깨의 근육이 드러나있는 그의 몸은 과연 작은 거인이라는 이명에 걸맞는 모습이었다.

나는 다실바 기수와 함께한 즐거운여정의 트리플 티아라 달성의 순간을 목격했기 때문에 다실바 기수가 기승하기를 조금 바라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 아이는 전력을 다해 달릴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개의치 않기로 했다.

 

3번 원더풀슬루와 문세영 기수 ⓒ최현성 전문기자

원더풀슬루는 한 달 전에 보았던 그 모습대로였다. 목은 비교적 두꺼웠지만 유려한 마체가 정말 물 흐르듯이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주는 원더풀슬루는 배당판에 비추어지는 인기와 배당을 떠나 서울의 기대를 잔뜩 받고 있었다. 어느 누구는 당연 여정이도 응원하지만 부디 서울 출신의 암말도 한 번 이겨주길 바란다며 복잡한 심정으로 슬루를 응원하기도 했다. 지역감정 비슷한 감정이 덧씌워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원더풀슬루에겐 서울의 문세영 기수가 기승했다. 그의 이명은 경마 황태자지만, 나는 그를 경마 황제라고 부르고 싶다. 지난 일요일의 낙마 부상은 그에게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듯했다. 그들은 서울의 두 자존심이었고, 굳세게 버틸 수 있는 호흡이었다.

 

가장 먼저 앞서나가는 6번 라온더스퍼트와 최범현 기수, 그 뒤를 쫓는 5번 즐거운여정과 서승운 기수, 1번 강서자이언트와 유현명 기수, 3번 원더풀슬루와 문세영기수 ⓒ최현성 전문기자

가장 앞서 나가는 것은 6번의 라온더스퍼트와 최범현 기수였다. 5번의 번호를 받은 즐거운여정과 서승운 기수가 그 뒤를 따랐고, 3번의 원더풀슬루와 문세영 기수는 즐거운여정을 마킹하는 것 같았다. 서승운 기수는 코앞의 주자가 거리를 벌려 나아가는데도 페이스를 유지했다.

짧은 시간 동안 이어진 대열과 순서가 무너지는 건 세 번째 코너에 접어들면서였다. 라온더스퍼트의 옆에 즐거운여정이 나타났고, 원더풀슬루가 바짝 따라붙었다.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세 개의 원색이 나란히 서서 네 번째 코너를 돌았다. 선두 진출에 실패한 8번의 옐로우캣과 김태희 기수는 1번 강서자이언트와 유현명 기수와 함께 선두 그룹의 뒤에서 힘을 아꼈다.

직선주로에 접어들자마자 라온더스퍼트의 탄력이 줄어들며 즐거운여정이 앞섰다. 강서자이언트가 내곽으로 파고들어 기회를 노렸고, 옐로우캣이 3위권 경쟁에 들어섰다.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한 5번 즐거운여정과 서승운 기수 ⓒ최현성 전문기자
결승선까지 50미터를 남기고 엄청난 뒷심을 보여준 원더풀슬루, 과연 다음번에는 어떤 달리기를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된다 ⓒ최현성 전문기자
결승선까지 50미터를 남기고 엄청난 뒷심을 보여준 원더풀슬루, 과연 다음번에는 어떤 달리기를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된다 ⓒ최현성 전문기자

나란했던 선두 대열이 무너져 내리면서 원더풀슬루가 또다시 즐거운여정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다섯 번째의 도전이었다. 오직 한 번 밖에 넘어서지 못한 그 뒷모습을 다시 한번 더 넘어설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지만, 결승선까지 50미터를 남기고 내디딘 마지막 탄력이 여왕에게 닿는 일은 끝내 벌어지지 않았다. 즐거운여정과 서승운 기수는 추격을 뿌리치고 결승선을 통과했다.

하마대로 돌아온 문세영 기수는 원더풀슬루에게서 하마 하기도 전에 진지한 표정으로 비전127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아직 열의가 남아있었다. 이 경주가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되뇌는 것만 같았다. 해럴드경제배에서 너트플레이가 간격을 좁혀 글로벌히트의 뒤를 바짝 쫓았던 것처럼, 다음번엔 어쩌면 정말 넘어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처럼, 문세영 기수는 원더풀슬루에게 지워지지 않을 희망을 품는 것처럼 보였다.

 

2024년 동아일보배(L) 시상식 ⓒ최현성 전문기자

부동의 강자에게 도전하는 이인자의 모습은 아름답다. 강자를 응원하는 것조차 깜빡 잊을 정도로. 어쩌면 그 누군가처럼 복잡한 심정으로 부산의 즐거운여정과 서울의 원더풀슬루를 동시에 응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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