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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영 비시 詩帖]

[김문영 비시 詩帖] 2020 고구마를 캐면서

2020. 10. 06 by 김문영 글지

<2020 고구마를 캐면서>

 

엎친 데 덮친 일들이 이어져온 시간

본질을 벗어난 언어들이 미친듯이 춤추고

구황 되어야할 고구마조차 여물지 못했구나

긴 장마 폭우 태풍 견디며 잎은 무성한데

결실 잉태하지 못한 고구마뿌리를 보면서

그래도 캐야하는 현실 서글프다

시작이 반이라면 끝은 전부

태산이 아무리 높아도 하늘아래 봉우리

오르고 나서야 높이와 깊이 넓이를 알 수 있다

고구마를 캐는 일도 마찬가지

첫 고구마를 캘 때는 그저 신기하고 신비로워 힘든 줄 몰랐다

그러나 캐면 캘수록 팔다리가 저려오고 온 몸이 쑤시는구나

아버지 등같은 밭이랑 파헤치니

풀 뽑다가 쓰러진 어머니의 죽음이 캐어지는구나

농삿일을 한다는 건 지겹고 힘들다

지루하고 고통스럽다

결실 없는 굳은 땅을 파헤치는 일은 더욱 힘들다

내가 하기 힘들면 남도 하기 힘든 법

누군가는 해야할 일 내가 하는 게 마음 편하지

언젠가는 해야할 일 지금 하는 게 마음 편하지

어차피 해야할 일 더 잘하자

시큰거리는 손목 감싸안고 호미자루 움켜쥐지만

굳은 땅은 호미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호미 내던지고 삽쇠스랑 동원하여 발로 밟으니

짧아진 가을해 뉘엿뉘엿 서산에 지네

결실 없는 고구마밭은 캐낸 넓이보다 많이 남고

줄기인지 고구마인지 구분 안되는 결실이라도

내일 마저 캐야지 손목 아프고 허리아파도 캐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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