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년회 윤한로나는 닭띠마누라는 오팔 개띱니다마누라는 고등학교를 나오고나는 삼류대학을 나왔습니다나도 작은데 마누라는 더 작습니다그래서 우리는 애들도 좀 작습니다아무튼 서로가 비스무레 우리는부부면서 친구 같습니다그래 어느새 말도 틉니다먹는 거 입는 거 말하는 거기쁜 거 슬픈 거 괴로워하는 거까지언뜻, 여늬 사람들이랑 비교해 보니평범합니다 그러던 흰눈 나리는 날흰눈 쌓여 발목까지 푹푹 빠진 날둘 산에 가서 망년회하자막걸리 한잔 하면서 알았습니다자식새끼에 부모에 성당 일에쏟아내는 고생 고생,들어보니 모두 그럴듯합니다거기에 대니 나란 사람할
포스트 맨 윤한로작고 가난한 섬우편배달부 청년 마리오가 여느 때망명 온 대시인 네루다에게 물었다자꾸만 물이 모자란다니, 물을 많이 쓰세요? 네루다가 말했다아니 필요한 만큼만 쓰지그러자 대시인보다 더 대시인 마리오가히쭈그레하면서도 조용히 말했다여기서는 그게 많이 쓰는 거예요파도소리 가난한 그 섬에가고 싶다
그 손 윤한로안중근 도마 의사를 존경해서엄청 존경한 나머지왜적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쏘는 동상까지 세웠으니우리나라 곳곳, 골골을 짯짯이 사랑해서너무 사랑한 나머지본적마저 경기도에서 저 전라도 장성 땅으로 파 갔으니용산으로 밀양 현장으로 강정마을로 삼보일배로투사로 애국자로 농사꾼으로 살았으니뱃놈으로 사제로 머슴으로 내던져졌으니맨날맨날 싸우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아니다, 밑바닥에 깔리기 위해이름마저 구들장으로 바꿨으니, 방구들장 신부님그러나 하느님께도이 세상 것 본인이 좋아하는 걸루 하나쯤희생 봉헌해 드려야 했기, 회로다 하자!그러구
인심 윤한로이따금 개떡 진실 그립고도목이 메네그려수도국산이나 개건너 살 때똥구멍이 찢어져라가난하고 어렵던 시절에도개떡 인심은 좋았으니그 누가 개떡 먹는 걸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을라 치면즈이도 그것밖에 먹을 게 없지만별 도리 없어라한 쪼가리 떼어 주고 말았으니꺼끌꺼끌 말라붙어양중엔 차돌멩이만큼이나 딱딱한 개떡그 한 쪼가리를 또 애꼈다간미웁고도 싫어라마침내 막내 모개한테까지 떼어 주니어린 마음에도 묘리 없어라개떡은 본디 떼어 주고 또 떼어 주란 것인가감출 수도, 숨길 수도 없는 것이던가이 구석 저 구석 굴러다니며 발로 채이기까지나누고 나
골방 윤한로나도 작고마누라도 작고애들도 작고그러니 집도 작고 직장이며눈물도, 아픔도, 기쁨도시까지 작을 수밖에그래! 우린 늘 쫄며 산다그런데 이렇게 사는 것도나쁘잖습디다, 굳이가난을 배우잖아도 가난하니까선을 배우잖아도 선량하니까겸손을 배우잖아도 겸손하니까, 게다크고 힘센 사람들 여벌로우리 숫제 건드리지 않고 지나치니까이 작은 존재들, 약한 존재들만일 먼저 건드린다면, 깔아뭉갠다면?그땐 불같이 일어서리라타오르리라 사라지리라 찌그러지리라, 궤짝같이흑흑, 늘상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시작 메모상상은 아픔의 이불이다. 절망의 우물이다.
나무의 말 윤한로나 그대에게옵니다그대 나에게갑니다그대 나보다더 빨리 늦습니다나 그대보다더 늦게 빠릅니다이제야 그대, 말할 줄모르는 법을 압니다이제야 나, 들을 줄모르는 법을 압니다나 그대 그립지않습니다그대 또한 내가 그립지않습니다 시작 메모김득신은 워낙 노둔하여 10세에야 글을 깨쳤다. 웬만한 글은 수십 번, 수백 번은 읽어야 했다. 옆에서들 아예 학문을 때려치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천성이 성실하여 이곳저곳 책상을 지고 떠돌며 공부를 놓지 않았고 마침내 문과에 합격한다. 그때 나이 59세이다. 그리곤 바로 벼슬 따위에는 뜻을 버리고
윤두꺼비 윤직원 윤한로우리 문학 가운데 보물 같은 소설이 있는데바로 채만식「태평천하」입지요거기 주인공 이름하여 윤두꺼비 윤두섭은한때 노름꾼 아버지가 물려준 집과 재산을억착같이 불리고 늘리고 닥닥 긁어모은 덕으로그 잘난 만석꾼이 됐으며 그러구러이제 한창 구한말 나라가 무너져 가고탐관오리, 화적패가 날뛰던 개판 시절이 ‘직원’을 돈으로 삽니다만(‘직원’이라 함은 교장선생님쯤 되는데거의 옛날 시골 훈장님쯤입니다)아무 날 느닷없이 화적을 맞은지라저 피 같은 재산과 재물몽조리 불타고 빼앗기고 맙니다요그리하여 우리 주인공 윤직원 영감님땅을 치
도스토옙스키 3 윤한로백치 청년 므이쉬낀이 사랑한백치보다 훨씬 더 어리석고더 가난하고 더 못난훨씬 더 백치인 마리들창 두 개 난 오막살이에늙은 어머니와 단 둘맨발에 너덜너덜한 옷남에 집 빨래하고 소 치고겨우겨우 밥 빌어먹지만어느 날 사기꾼 놈팡이한테 엮여 따라갔다간바로 채였지만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다라고 생각하는그것으로도 큰 은혜라 생각하는백치보다 훨씬 더 고결한 아가씨 마리니까짓 것들이 뭐냐, 니까짓 것들이 뭐냐애시당초 이런 마음은 손톱만큼도 먹질 않아마침내 애들이 좋아하고우리 주인공 백치 청년이 사랑했네새들이 좋아하
습작 노트 6 윤한로마음이 깊고어둡고 절실하니오히려 시는 개 같다길다차라리 마음이 개 같으니시 깊고 어둡고짧다진즉 알았어야 했건만알면서도 그건 내가 나한테자꾸 속는 거다 속이는 거다만지면 만질수록 덧나는 게다시작 메모앞으로 고요니 고민이니 진실이니 진지함이니 그리움이니 외로움이니 따위 없이 이것저것 개 같은 마음먹어야겠다. 우리는 왜 쉽게 보지 못할까. 쉽게 듣지 못할까. 쉽게 느끼고 생각하지 못할까. 지금 우리가 뭔지 자기 자신한테 크게 잘못하고 있지나 않을까.
도스토옙스키2 윤한로어떤 선도어떤 진실도어떤 아름다움도가난을 이기지 못한다당할 수 없다골방 들창에 비 구죽죽 내리고이런 날은 죽치며사타구니 쓸며 쓸며 또다시도스토옙스키 그 가난 음울 음미한다무슨 무슨 대사상도무슨 무슨 대지혜도무슨 무슨 대문학도가난을 이기지 못한다누르지 못한다 감히이겨서는 안 된다썩어 문드러진 세상에유일하게 깨끗한, 거룩한 가난거기에 폐를 쥐어짜는 병까지 곁들이다니도스토옙스키, 비참 그 앞에 서면장황한 사변 그만 다 내팽개치곤감상 감정 격정에 빠져 버리고 만다찌질해지고 만다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옳구나구죽죽, 영원히
비 윤한로다 털어먹은 듯이 말아먹은 듯이보면 볼수록 나 같다가 나 같잖고너 같고 그눔 같다가너 같잖고 그눔 같잖고시무룩, 마침내 우리 본연에 다다른 듯아주 하잘 것 없어라멋들어진 녀석구죽죽 비는 오고마루 밑창 속죽치는 날이구나컹컹 짖을 염도 없이저 고뇌에 빠진고민에 가득 찬그리움에 사무친진지한 절실한 열렬한 치열한실의에 빠진허랑방탕한 모조리 탕진한 듯한수염 난 녀석이여시인 박사 교수 기사님 같고농부 어부 술꾼 투사 배달부 같고사무원 약초꾼 양봉업자 같고중학생 대학원생 문학지망생도 같고연인 노숙자 큰처남 작은처남도 같고진종일 뺑이 친
발 묵상 윤한로우리보다 가난하지도 않고우리보다 진실하지도 않고우리보다 깊지도 그윽하지도 않고우리보다 굵지도 거칠지도 않고우리보다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우리보다 크게 잘 나지도우리보다 크게 못나지도 않고더 게으르고더 탐욕스럽고더 무지하고 무식하고더 겁 많고 연약하고더 졸렬하고 말도 많고더 뻔뻔하고따지고 보면거개가 그렇고 그런온통 거기서 거기인저 말대가리 성인이여끊임없이 교만하고끊임없이 비열하고 비굴하고끊임없이 누군가를 미워하고끊임없이 돌아가려 하고 때려치려 하고그러나 그대 그래서세상을 이겼구나 밟았구나터덜터덜, 어느 날 문득, 저도 모
습작 노트 5 윤한로그저 끙끙굵고뜨겁게쓰고 싶다누고 싶다길동이나처럼아, 시랄 것도 없는 시점점기술만 부리고 시작 메모워즈워드가 말하길 시골 사람들 말은 힘이 있다. 시골 사람들 말은 시적이고 철학적이다. 시골 사람들 말은 꾸밈없고 소박하고 사치와 허영에 물들지 않아서 그렇다. 가녀리게 자꾸 졸렬하게 가다듬을 필요 없다. 나도 시골에 산다. 그러니 굵고 거칠게 가자.
가난에 대해서 윤한로옷도 못 입고 내 맘대로 밥도 못 먹고똥오줌 못 가리고곧 팔도 다리도 머리도마음까지 못 쓰는 시간이 오겠지시도 못 쓰고 못 읽고웬 안경을 밥 숟가락이라그걸로다 밥을 퍼먹으려댁들은 뉘신가요사랑하는 아내도 아들도 친구도다 잃은 시간다 떨어져 나간 시간마지막 기도, 믿음도 다 떨어져 나갔구나죄도 고하지 못하는구나무엇이 어떤 죄인지조차 홀라당 알 배 없는데그래, 이제부터다 우리 영혼 그 누구보다 밑바닥맑고 착하고 자유롭다집도 절도 없지만 모든 곳이 다 집이어라버스도 타다가 전철도 타다가나도 타다가 바람도 타다가걸레 스님
시창작 교실 4 윤한로 우왁스레 잡으려고이기려고 하기보단얼마나 잘버려야 하는지얼마나 잘죽여야 하는지알고 나니내 바둑은 한층 세졌다아니 깊어졌다실패한시처럼망가진인생처럼 시작 메모요즘 내 발은 춤추는 것보다 걷는 게 좋더라. 맹숭맹숭하니 목적 없는 것들보다 조금이라도 목적 있는 것들이 좋더라. 순수보다 참여가, 실천이 훨씬 좋더라. 늬들! 이젠 속지 않는다.
귀가 윤한로자꾸 씨팔이니 조팔이니 찾지만검정 비닐봉다리 하나구슬프구나 그 속엔 막상작고 시금털털한 것들울퉁불퉁한 것들, 연약한 것들볼품없는 것들방구 냄새나는 몇 푼 안 되는 것들애오라지 허접스레한 것들뭐 굶어 죽거나 큰 아픔큰 불행 따위 있는 건 아니나어디 가서 쪽도 못 쓰는 것들오오냐, 얘들아, 이제 곧 간다끽해야 똥골목 한가운데 갈짓자휘젓고저 누비고저도대체 오늘 하루이보다 누가 더 진실하냐더 깨졌냐 지쳤냐누가 더 잘 쓰냐웃기는 짜장면들!또 씨팔이니 조팔이니 찾을지언정저들 위하고픈 마음나 불쑥 성호를 긋네 시작 메모오늘도 내 화살
바가지 달 윤한로어쭈,걸친 것도 헐렁하고낯도 뉘렇고시골 내려가서 산다니까시 많이 썼겠네요이런 말이 되게 듣기 싫었는데농사도 쫌 짓겠고이런 말은 더 듣기 싫구나희희낙락, 시는 개도 소도 다 쓴다손농사는 워낙이개나 소나 다 짓는 게 아니잖냐쓰는 듯 쓰지 않는 듯있는 듯 없는 듯이들 속에 확, 썩을라 내려왔단 말이다그런데 아무래도 잘 먹고 잘 입고빌빌 그게, 언제나부끄럽단 말이다 시작 메모우아하게 보이려고 지혜를 감추지 마라. 얼마 전 성경 집회서에서 찾아낸 구절이다. 지혜는 단순하고 우직하고 거칠고 무뚝뚝하기까지 한 거로구나. 또한 눈
시창작 교실 3 윤한로 불현듯나두 그 누군가처럼귀를 자르고 싶다거울을 보면 말이다그리하여 불완전하게, 아니 부조리하게나두 나를그리고 싶다 쓰고 싶다나를 살고 싶다이 귀 잘라도 붉은 꽃처럼아,아프지만 않다면 말이다 시작 메모불완전, 읽을 수 있다. 완전, 읽을 수 없다. 불완전 시인, 그립고 그립다. 완전 시인, 하나도 그립지 않다. 불완전, 부조리, 불행, 불우 시인이여.
아, 그렇구나 윤한로이 아픔 지나가면이 시간 이겨내면, 겪어내면하늘도 돌아오고새도 나무도 바람도 구름도덩달아 돌아오고낮과 밤, 아침과 노을, 어둠그러고 보니 우리를 덮었던 어둠은괴로움은 얼마나 깊고 그윽했던가아, 그렇구나우리들이 사랑했던아니 우리를 사랑했던, 먹여살렸던일도, 일터도 돌아오고그대도, 멀리서 그대들도 돌아오고이제 다시는 미워하지 않으리뻔뻔스럽던 나 또한 어디선가 돌아오고맑아져선진실해져선겸손해져선한껏 낮아져선 시작 메모보라, 사람이 아프니 다 아프다. 하늘도 땅도 나무도 새도 나비도 풀도 돌도 구름도 시간도 강물도 도무지
시창작 교실 2 윤한로앳된 시고운 시이슬 시꽃잎 시별 구름 시이런 것보다개떡 시똥차 시구린 시괴론 시파리 모기 거미 시ㅠㅠ 시쓴다배부르고등 따습고 한 것들쓰잖는다외려깨지거나금 가거나새 파 먹거나그지 같거나 한 것들쓴다, 역부러이슬 시보다 더 이슬 같은개떡 시여꽃잎 시보다 더 불콰한똥차 시여, ㅠㅠ 시작 메모벚꽃 활짝 피니 마치 눈이 온 듯하댄다. 그런데 이제 눈이 오면 또 벚꽃 같다고 할 게다. 그네들 쓰는 거 안 봐도 뻔하다. 말해 무삼하리요다. 1920년대, 간도로 쫓겨가 거지로 떠돌기까지 하며 살았던 최서해는 스스로 겪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