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현지시각으로 3월 12일부터 15일까지 영국과 아일랜드 경마를 통틀어서 가장 큰 장애물 경주 일정인 첼트넘 페스티벌(Cheltenham Festival)이 열린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동안 28개 경주가 열리며, 그중 G1이 14개가 포함되어 있다. 이 기간에 치러지는 대표적인 경주로는 장애물 경주마에게 클래식 경주와 비슷한 성격인 허들 경주 G1 트라이엄프 허들(Triumph Hurdle)과 펜스 경주 G1 아클 챌린지 트로피(Arkle Challenge Trophy), 현역 최강 허들 경주마를 가리는 G1 챔피언 허들(Champion Hurdle), 2마일 펜스 최강마를 가리는 G1 퀸 마더 챔피언 체이스(Queen Mother Champion Chase), 그리고 페스티벌의 마지막 날을 장식하는 펜스 경주 G1 첼트넘 골드 컵(Cheltenham Gold Cup)이 있다. 

오늘의 주인공인 스테이트 맨(State Man)은 페스티벌 첫날인 3월 12일 열리는 챔피언 허들에 출주한다. 2017년에 태어나 3월 9일에 일곱 번째 생일을 맞은 스테이트 맨은 현역 아일랜드 허들 경주마 중 레이팅이 169로 가장 높으며, 이번 경주에서 통산 아홉 번째 G1 트로피를 노린다. 

스테이트 맨은 프랑스의 진한 혈통을 물려받았다. 부마인 닥터 디노(Doctor DIno)는 G1 홍콩 바즈(Hongkong Vase)를 두 차례, 미국 G1 맨 오 워 스테이크스(Man o'War Stakes)를 한 차례 우승한 평지 경주마로, 프랑스에 본적을 뒀다. 장애물 경주마인 모마 아헤 스타시옹(Arret Station)은 38전 3승으로 뛰어난 성적을 거두진 못했다. 그러나 명마 새들러즈 웰스(Sadler's Wells)의 피가 흐르는 말이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스테이트 맨은 첫 번째 생일로부터 한 달이 지난 2018년 4월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 그 뒤 2년 후 스테이트 맨은 프랑스의 오뙤이(Auteuil) 경마 1마일 7펄롱 허들 코스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2마신차 2착을 기록하며 잠재력을 선보였다. 그리고 2021년 1월 스테이트 맨은 프랑스에서 아일랜드로 건너가 장애물 경주마 육성의 달인인 윌리 멀린스(Willie Mullins) 마사로 들어간다. 

스테이트 맨의 데뷔전은 아일랜드에서도 잘 풀리지 않았다. 스테이트 맨은 2021년 박싱데이에 레퍼즈타운(Leopardstown) 경마장 2마일 코스에서 8/13이라는 배당률로 1번 인기를 받고 미우승마 경주에 나섰다. 마지막 두 번째 장애물을 앞두고 3위를 달리던 스테이트 맨은 실수를 저지르면서 넘어졌고 그렇게 경주를 마칠 수 밖에 없었다. 

두 번의 좌절이 있었지만 스테이트 맨은 굴하지 않았다. 2022년 2월에 치른 세 번째 경주부터 2022년 12월에 치른 일곱 번째 경주까지 파죽지세로 연승을 이어갔다. 순서대로 미우승마 경주와 G3 카운티 핸디캡 허들(County Handicap Hurdle)*, G1 알라나 홈즈 챔피언 노비스 허들(Alanna Homes Champion Novice Hurdle), G1 모기아나 허들(Morgiana Hurdle), G1 매터슨 허들(Matheson Hurdle)이었다. 그리고 아일랜드 최고의 허들 경주마가 되기 위해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G1 아이리시 챔피언 허들(Irish Champion Hurdle)로 향했다. 

*영국경마협회(BHA)는 2023년부터 장애물 경주의 G3을 프리미어 핸디캡(Premier Handicap)으로 개편하고, 리스티드 핸디캡 경주를 폐지했다. 기존 리스티드 핸디캡 경주는 프리미어 핸디캡으로 승격되거나 클래스 2 경주로 강등되었다. 

2023년 아이리시 챔피언 허들에서 가장 강력한 대항마는 17전 16승에 G1만 12번을 우승했으며 1989년생의 젊은 기수 레이첼 블랙모어(Rachael Blackmore)를 스타 기수로 만들어 준 영국의 암말 허니서클(Honeysuckle)이었다. 스테이트 맨의 주전 기수는 아일랜드 장애물 경주의 기라성 1990년생 폴 타운엔드(Paul Townend). 따라서 이 경주는 경주마뿐만이 아니라 기수의 맞대결로도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기대와는 다르게 결과는 다소 싱겁게 끝났다. 스테이트 맨은 선두를 한 번도 내주지 않으며 그대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허니서클은 열심히 스테이트 맨을 추격했지만 닿지 못했다. 1-2착의 마신차는 4 3/4마신. 스테이트 맨의 압승이었다. 허니서클은 이 경주 이후 G1 경주에 한 차례 더 나서 우승해 19전 17승을 만들었고, 현재는 사실상 은퇴한 상태이다. 

허나 스테이트 맨이 최강이 되기 위해 넘어야 할 벽은 허니서클만 있지 않았다. 영국 최고의 허들 경주마이자 동갑내기인 컨스티투션 힐(Constitution Hill)이 첼트넘에서 열리는 G1 챔피언 허들(Champion Hurdle)에서 도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5전 5승으로 경주 숫자는 비록 적지만 173이란 레이팅을 자랑하며 역대 최고의 허들 경주마의 길을 걷고 있던 컨스티투션 힐을 상대로 167 레이팅의 스테이트 맨은 혁명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스테이트 맨의 국가 건설 꿈은 너무나 허망하게 무너졌다. 컨스티투션 힐은 강하다는 표현으로 강함을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강했고, 스테이트 맨은 9마신차 패배라는 씁쓸함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오랜만에 1착을 놓친 스테이트 맨은 그 울분을 분풀이 하듯 2023년 4월 28일 열린 G1 펀치스타운 챔피언 허들(Punchestown Champion Hurdle)에서 다시 한번 와이어-투-와이어 우승을 달성하며 시즌을 마쳤다.  달 전 꺾었던 상대인 보반(Vauban)에게 또다시 격차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경주였다. 마지막 점프에서 살짝 아쉬움이 있었지만, 남은 경주를 이어가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2023-24시즌 스테이트 맨은 전년도와 동일한 로테이션을 채택했다. 시즌 복귀전을 G1 모기아나 허들로 선택해 5마신차 승리, 두 번째 경주를 G1 매터슨 허들로 선택해 3 1/4마신차 승리를 기록하면서 두 대회 모두 2연패를 이뤄냈다. 세 번째는 역시 G1 아이리시 챔피언 허들. 작년의 허니서클과 같은 경쟁마가 없었기에 이번 경주 또한 압승이 예상되었고 스테이트 맨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허니서클 대신 밥 올린저(Bob Olinger)를 타고 설욕에 나선 블랙모어 기수를 상대로 스테이트 맨과 타운엔드 기수는 5 1/2마신차라는 거리를 가볍게 선사했다. 

스테이트 맨의 다음 행선지는 첼트넘으로, 3월 12일 첼트넘 페스티벌의 개막일을 알리는 G1 챔피언 허들에 다시 도전한다. 하지만 올해엔 복수혈전을 펼치지 못한다. 컨스티투션 힐이 부상으로 인해 출주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스테이트 맨은 챔피언 허들의 도전자이면서 레이팅상 169로 가장 높은 기묘한 입장에서 경주를 치르게 되었다.

경쟁마들의 수준 또한 크게 어렵지 않다. 컨스티투션 힐이 빠진 상태에서 가장 강력한 대항마로 여겨진 말은 4세마 시절 G1을 두 차례 따낸 전력이 있으며 같은 마사에 속한 암말 로시마우스(Lossiemouth)였다. 그러나 멀린스 조교사가 로시마우스를 G1 데이비드 니콜슨 메어스 허들(David Nicholson Mares' Hurdles)에 내보내기로 최종 결정하면서 이 둘의 대결은 무산되었다. 대신 고든 엘리엇(Gordon Elliott) 마사의 6세마 아이리시 포인트(Irish Point)와 치열한 우승 경쟁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시원시원하게 전방으로 뻗어나가는 스타일을 선보이는 스테이트 맨이 작년의 아쉬움을 떨쳐낼 수 있을까? 통산 아홉 번째 G1 트로피를 차지해 아일랜드와 영국 두 나라에서 모두 챔피언 허들을 따낼 수 있을까? 첼트넘 페스티벌에 대한 리뷰는 다음 주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