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3년차에 G1 7승. 연승 행진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활동하는 장애물 경주마 대부분은 경험이 쌓여감에 따라 허들에서 펜스로 종목을 변경한다. 이유는 하나다. 펜스 경주에 걸린 최소 상금이 허들 경주에 걸린 최소 상금보다 많기 때문이다. 2022년 영국경마협회(BHA)가 발표한 2023년 경주 최소 상금 기준에 따르면 펜스 경주 G1 오픈전의 최소 상금은 15만 파운드(한화 약 2억 5,400만 원)인 반면, 허들 경주 G1 오픈전의 최소 상금은 10만 파운드(한화 약 1억 6,952만 원)이다. G1보다 수준이 낮은 경주에서도 펜스 경주의 상금이 허들 경주의 상금보다 항상 많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마주 상당수는 자신이 소유한 장애물 경주마를 상금이 더 많이 걸린 펜스 경주에 내보내려고 한다. 자신의 말이 가진 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말이다. 

오늘 소개할 말은 장애물 경주마 경력 3년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허들 경주를 뛴다. 더 나아가 마주는 이 말의 종목 전환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마주 마이클 버클리(Michael Buckley)는 오히려 이 말이 허들을 계속 넘으며 전설이 되기를 희망한다. 컨스티투션 힐(Constitution Hill)은 그렇게 허들 경주에서 G1 7연승을 달릴 수 있었다. 

(출처: Getty Images)
(출처: Getty Images)

컨스티투션 힐은 현재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허들 경주마 중 독보적인 175의 공식 레이팅을 자랑하며, 이는 2위인 시슈킨(Shishkin)과 비교해 무려 12나 더 큰 것이다. 2023년 3월 이후 두 차례나 G1 경주를 우승했음에도 경쟁마의 레이팅이 너무 낮은 나머지 레이팅이 175에서 올라가지 못했다. 경마 전문 매체 타임폼(Timeform) 또한 이 말의 주력을 높게 평가하면서도(177, 역대 공동 6위), 최근에는 '임시'레이팅을 뜻하는 'p'를 곁들여 표시하고 있다. 홀로 너무나 압도적인 나머지 이 말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2017년 3월 16일에 태어난 컨스티투션 힐의 부마는 프랑스 출신의 블루 브헤질(Blue Bresil)로, 대상 경주 우승은 없지만 제법 꾸준한 성적을 기록한 말이다. 모마 퀸 오브 더 스테이지(Queen Of The Stage)는 뚜렷한 성적을 기록하지 못한 말이지만, 그 위로의 모계 혈통이 훌륭하다. 모부마 킹스 티어터(King's Theatre)의 부마가 전설적인 말 중 하나인 새들러즈 웰스(Saddler's Wells)이다. 킹스 티어터의 자마 중에는 장애물 경주 G1에서 9승을 기록했으며 펜스 경주 최고 레이팅이 176에 달했던 큐 카드(Cue Card)가 있다. 

데뷔전을 치르기 전 중성화 수술을 받은 컨스티투션 힐의 첫 번째 공식 경주는 샌다운(Sandown) 경마장에서 열린 클래스 3 노비스 허들 경주였다. 중반까지 힘을 모은 컨스티투션 힐은 마지막 장애물을 넘으면서 선두로 나섰고, 그대로 달려나가 14마신차 대승을 거뒀다.

데뷔전의 인상이 강렬해서 였을까. 컨스티투션 힐은 한 달 뒤 같은 경마장에서 열린 G1 톨워스 노비시스 허들(Tolworth Novices' Hurdle)에서 2/5라는 상당히 낮은 배당률을 받고 경주에 나선다. 불량한 마장에서 펼쳐진 힘든 경주 속에 컨스티투션 힐은 마지막 두 번째 장애물을 넘은 직후 선두로 나서더니 그대로 나머지를 따돌리면서 12마신차 승리를 기록했다. 

컨스티투션 힐은 기세를 몰아서 2021-22시즌 마지막 일정으로 영국 장애물 경주의 꽃 첼트넘 페스티벌(Cheltenham Festival)을 선택했다. 페스티벌의 개막을 알리는 G1 프림 노비시스 허들(Supreme Novices' Hurdle)에서 컨스티투션 힐은 동세대 강력한 라이벌인 존봉(Jonbon)과 다이스트 다이나모(Dysart Dynamo) 등과 맞붙었다. 지난 화를 읽은 독자는 결과를 알고 있겠지만, 경주는 컨스티투션 힐의 22마신차 대승으로 끝났다. 다이스트 다이나모는 마지막 세 번째 장애물에 걸려 넘어졌고, 존봉은 끝까지 노력했지만 편자가 떨어지는 불운을 겪었다. 기수 니코 드 보인빌(Nico de Boinville)은 위닝 포스트를 앞두고 세레모니를 하는 여유로운 모습도 보여줬다. 

2022 Supreme Novices' Hurdle(G1), Cheltenham Old, 2m 1/2f, Good to Soft, 8 hurdles

2022-23시즌, 노비스 허들 시즌을 함께 달렸던 경쟁마들이 펜스로 종목을 전환한 가운데 컨스티투션 힐은 허들 경주에서 경력을 이어갔다. 복귀전으로 선택한 경주는 뉴캐슬(Newcastle) 경마장에서 열린 G1 파이팅 핍스 허들(Fighting Fifth Hurdle). 1/4라는 배당률에 걸맞게 컨스티투션 힐은 와이어-투-와이어 우승을 기록했고, 2착마 에파탕테(Epatante)와의 마신차는 12마신이었다. 컨스티투션 힐은 에파탕테와 다음 경주인 G1 크리스마스 허들(Christmas Hurdle)에서도 맞붙었는데, 이번에는 17마신차로 거리를 더 벌리면서 우승했다. 해당 경주 배당률은 더 낮아진 1/7. 이렇게 컨스티투션 힐은 데뷔전부터 5연승이자 네 번째 G1 우승을 기록했다. 

두 달 동안 휴식을 취한 컨스티투션 힐은 다음 출주로 영국 허들 최강마를 결정하는 G1 챔피언 허들 챌린지 트로피(Champion Hurdle Challenge Trophy)를 선택했다. 아일랜드 허들 G1 4연승을 달린 스테이트 맨(State Man)이 출주를 선언하면서 이번 경주는 영국과 아일랜드의 자존심 싸움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대중의 예상은 컨스티투션 힐의 압도적인 승리. 스테이트 맨이 7/2의 배당률을 받았는데 컨스티투션 힐은 4/11의 배당률을 받았다. 

컨스티투션 힐은 선행을 줄곧 해왔기에 전방에서 경주를 펼칠 것이라 예상되었고, 스테이트 맨은 다양한 각질을 활용해왔기에 경주 전개가 어떻게 될 지가 흥미로웠다. 컨스티투션 힐은 초반부터 선두를 압박하는 경주를 진행했고, 스테이트 맨은 중단에서 달렸다. 마지막 세 번째 장애물을 넘은 후 선두로 나선 컨스티투션 힐은 그대로 질주하기 시작했고, 스테이트 맨이 라이벌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최종 코너를 지난 시점에서 두 말의 거리는 2마신차. 그러나 여기서 컨스티투션 힐이 가속하면서 둘의 거리가 벌어졌다. 마지막 장애물을 깔끔하게 넘은 컨스티투션 힐은 그대로 결승선까지 내딛었고, 스테이트 맨은 추격의 의지가 꺾인 채 2착에 만족해야 했다. 둘의 최종 마신차는 9마신으로 정상결전이라고 불리기엔 다소 허무한 결과가 나와버렸다. 

2023 Champion Hurdle Challenge Trophy(G1), Cheltenham Old, 2m 1/2f, Soft, 8 hurdles

컨스티투션 힐의 2022-23시즌 마지막 경주는 2023년 4월 13일 아인트리(Aintree)에서 열린 G1 아인트리 허들(Aintree Hurdle)이었다. 평소보다 4펄롱 더 긴 거리의 경주에 나섰지만, 다른 경쟁마들과의 레이팅 차이가 20 가까이 나는 상황에서 이제는 컨스티투션 힐의 우승 여부보다는 과연 이 말이 몇 마신차로 우승할 것인지 더 궁금해지는 상황이 되었다. 시작부터 선두로 치고 나간 컨스티투션 힐은 컨디션이 별로 좋아 보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점프와 달리기를 바탕으로 선두를 한 번도 뺏기지 않은 상태에서 경주를 마쳤다. 2착 및 3착마와 고작 3마신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이기는 법을 아는 말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2023 Aintree Hurdle(G1), Aintree, 2m 4f, Good to Soft, 11 hurdles

컨스티투션 힐은 크리스마스 허들로 새로운 시즌을 시작했다. 아인트리 허들을 이기고도 레이팅이 오르지 못한 컨스티투션 힐을 상대로 다른 말들은 전혀 경쟁 상대가 되지 못했다. 1/12라는 배당률이 말해주듯이 경주는 너무나 쉽게 끝났다. G2에서 세 번 우승한 루바우드(Rubaud)가 분전했지만, 저 멀리 떠나가는 컨스티투션 힐을 따라잡기란 너무나 어려웠다. 그렇게 컨스티투션 힐은 2023년 크리스마스에도 승전보를 울리면서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2023 Christmas Hurdle(G1), Kempton Winter, 2m, Good, 8 hurdles

컨스티투션 힐은 2024년 1월 27일 열린 G2 인터내셔널 허들(International Hurdle)에 나설 예정이었지만, 니키 헨더슨(Nicky Henderson) 조교사는 만족할 만한 컨디션을 만들지 못했다면서 출주 포기를 선언하고는 3월 챔피언 허들 챌린지 트로피 직행을 예고했다. 

 

컨스티투션 힐은 좌회전(첼트넘, 뉴캐슬, 아인트리), 우회전(샌다운, 켐튼)을 가리지 않으며, 발을 자연스럽게 바꾼다. 거기에다가 점프도 잘 뛰는데 주력과 지구력도 압도적이다. 진영에서 무리하게 경주에 내보내거나 종목을 전환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이 말은 전설을 써가고 있다. 

타임폼 레이팅 기준 역대 최강의 허들 경주마는 1970년대 후반 영국에서 활약한 나이트 너스(Night Nurse)로, 최고 레이팅은 182였다. 컨스티투션 힐이 이제 7살인 점과 장애물 경주마가 8~9세까지 달린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182란 숫자는 넘지 못할 산도 아니다. 오히려 경쟁마가 없다는 이유로 레이팅이 오르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 과연 컨스티투션 힐이 무패 행진을 이어가면서 역대 최강의 허들 경주마로 등극할 수 있을까? 

 

저작권자 © 말산업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